30일 하오 2시 10분, 시카고 채권시장의 트레이더들은 숨을 죽이며 중앙은행의 조치를 기다렸다. 5분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쿼터(0.25%) 포인트 인상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트레이더들은 장내가 떠나갈듯 아우성을 지르며 사자 주문을 냈다. 금리를 인상하면 가장 타격 받는 금융상품이 채권인데도 불구, 이날 미국 채권시장의 기준물인 재무부채권 (TB) 30년물의 경우 주문이 폭주하는 바람에 수익율이 9BP(0.09%)나 폭락했다.금리인상은 어느 나라 정부나 싫어하는 금융정책이고, 중앙은행으로서도 비판을 감수하면서 단행하는 조치다. 이 어려운 조치를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이끄는 FRB는 금융시장과의 묵시적인 합의 하에 단행하는 절묘한 기술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소폭 금리인상은 달러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아시아·중남미 국가에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금리인상 후에 뉴욕 주가가 폭등했다는 점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 등 아시아 증시에 큰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 전망이다.
뉴욕 월가가 FRB의 결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대목은 크게 두 가지였다. 금리인상의 폭이 기대했던 대로였고, 무엇보다 금융정책의 방향이 의외였다.
대부분의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0.25% 포인트 인상을 점쳤지만, 일부에선 0.5% 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제기, 금융시장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FRB의 최종 결론은 많은 투자자들이 예상한, 그리고 용인한 폭만큼의 인상이었다. ★그림참조
월가를 놀라게 한 것은 FRB가 금융정책을 「중립 기조(NEUTRAL BIAS)」로 놓았다는 점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월가는 지난 5월 설정한 「긴축 기조(TIGHTENING BIAS)」가 이번에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따라서 이번에 중립 기조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오는 8월 24일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FRB의 조치의 가장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증거가 분명치 않은데도 금리를 올렸다는 점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율은 전월 대비 0%, 전년 동기대비 1.6%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이 거의 없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한 근거는 노동시장 과열이다. 미국의 실업율은 30년만에 가장 낮은 4.3%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호황이 9년째 지속되고, 연간 성장율이 4%를 넘다보니 노동시장은 뜨거워질 수 밖에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임금이 오르게 되고, 기업의 제조원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6일 그린스펀 의장은 『필립스 곡선의 원리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함으로써 금리인상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린스펀 휘하의 FRB는 10여년간 인플레이션과 싸워왔다. 94년 국제 유가가 폭등하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자, FRB는 3%였던 연방기금 금리를 1년에 걸쳐 6%로 대폭 인상했다. 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FRB는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행정부와 대립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FRB의 논리는 사전예방론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후 금리를 인상하면 부작용이 크므로 6개월전에 금리 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 조짐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96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잭 켐프씨는 CNN 방송의 토크쇼에 출연, 『FRB는 근거 없는 이론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한다』며 중앙은행의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뉴욕 월가의 펀드 매니저들은 쿼터 포인트의 금리 인상에 그칠 경우 주가를 뛰운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날 발표 직후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수직 상승, 순간적으로 200 포인트(2%)나 뛰었고, 증시 호황론자들은 연말까지 1만2,000 포인트에 이를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상은 한번에 그치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증시 과열을 우려하는 경제학자들이 많고, 부동산 시장도 달아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과열 조짐이 가속화되면 FRB가 또다시 긴축 기조로 방향을 바꾸어 연말까 지 1~2회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뉴욕=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