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벤담의 공리주의는 ‘행정 편의주의’에 대한 면죄부로 종종 악용된다. 정책의 수혜자가 피해자보다 많을 때 정부는 ‘차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발상은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특히 번지게 마련이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가점제를 골자로 한 청약제도개편안도 예외가 아니다. 개편안 발표 전 당사자들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청약부금자에 대한 배려를 끊임없이 정부에 주문했다. 청약가점제는 신혼부부 등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중소형 민간아파트 분양을 바라는 청약부금ㆍ소형 예금 가입자들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청약부금자들에 대한 사실상 ‘외면’으로 귀결됐다. 정부는 사실상 유주택 부금가입자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소형 평형의 아파트를 소유한 부금가입자는 같은 평형대 혹은 좀더 넓은 새 아파트를 청약받기가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청약저축가입자의 청약기회를 줄일 수 있고 ▦송파신도시 외 공영개발 확대 계획이 아직 없으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의 논리는 내막을 보면 표수(票數)를 의식한 손익계산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현재 청약저축과 부금가입자 수는 각각 242만명과 186만명. 단순 비교해도 청약저축 가입자 수가 부금가입자 수보다 56만명이 많다. 이중 무주택자만 따지면 저축가입자와 부금가입자가 각각 200만명과 132만명으로 차이는 68만명으로 늘어난다. 여기에다 청약부금 대상 공급량의 25%는 추첨제가 유지된다는 일종의 완충장치를 마련한 점을 생각하면 공영개발 확대와 가점제 적용으로 인한 수혜자(저축가입자)가 피해자(부금가입자)보다 훨씬 많아지게 된다. 이번 개편안으로 정부에 대한 지지표가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벤담의 말 중 정치에서는 ‘최대다수’라는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정부가 부금가입자를 외면하면서 50% 추첨제 유지 조항으로 290만 청약예금가입자는 내 편으로 남겨놓는 기지(?)를 발휘한 것도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