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와 백화점 업계가 당초 시한인 10월을 넘기면서 진통 끝에 판매수수료 인하 실행안을 도출했다. 공정위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분위기이지만 백화점들은 '속앓이'를 심하게 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올해 말까지 백화점을 향한 공정위의 칼끝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빅3 백화점 약 연 200억원 손실=롯데백화점은 800개 중소납품업체 중 403개 업체의 판매수수료를 낮추기로 했다. 7%포인트를 낮추는 업체가 164개, 5%포인트는 75개, 3%포인트는 164개이다.
현대백화점은 626개 입점 업체 중 321개 업체의 수수료를 인하한다. 7%포인트의 혜택을 받는 업체는 63개, 6%포인트는 80개, 5%포인트는 100개, 4%포인트는 26개, 3%포인트는 52개이다.
신세계백화점은 610개 업체 중 330개 업체의 수수료를 깎아준다. 7%포인트 105개, 5%포인트 138개, 3%포인트 87개이다. 이로써 '빅3' 백화점에 입점한 중소업체 판매수수료율은 현재 평균 32%에서 25∼29% 수준으로 내려가게 됐다.
이에 따른 빅3 백화점의 영업이익 감소폭은 2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롯데가 100억~120억원 정도이며 현대와 신세계가 합쳐서 롯데와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수준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수수료 인하 끝 아니다=공정위는 대ㆍ중소납품업체의 추가 부담을 계속 완화해나가기 위해 상품거래 없이 장부상으로만 매출을 일으키고 그에 따라 유통업체가 수수료를 취득하는 '가(假)매출'과 상품권 구입강요 등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또 대형 마트와 TV홈쇼핑과의 판매수수료(또는 판매장려금) 인하 문제도 이달 중 매듭지을 방침이다. 이 밖에도 대규모 유통업법 적용 대상인 나머지 대형 유통업체 52개사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판매수수료 인하를 유도할 계획이다.
연간 매출액 1,000억원 이상, 또는 매장 면적 합계가 3,000㎡를 넘는 유통업체들이 모두 대상이 된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11개사 외에 나머지 유통업체들의 경우 강제적인 조사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최대한 자율적인 인하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복잡한 속내 감추지 못한 백화점=백화점들은 속내가 복잡하다. 우선 일률적인 수수료율 인하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 발표로 판매수수료의 시장 기능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경쟁력이 떨어져 입점 철회를 앞두고 있던 한계기업들이 이번 수수료 인하안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이 떨어져 수수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업체는 퇴출되고 신규 업체가 입점하는 식의 순환구조가 깨진다는 것이다.
빅3 백화점은 공정위가 앞으로도 가매출과 상품권 강요 등에 대해 집중 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수수료 인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매출, 상품권 구입 강요 등과 같은 불법적인 일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라면서도 "동반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백화점들이 정부의 수수료 인하에 적극 부응한 만큼 수수료 문제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대형 유통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가해자이고 중소기업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곤란하며 진정으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