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민자도로 수술 통행료 거품 뺀다] 하도급비 후려치고도 고배당 하느라 적자 … 툭하면 혈세 보전도

■ 비싼 요금 실태와 대책은

수천억 하도급비 차액에 투자자 10% 수익 챙겨

민자법인 후순위채 발행 체크… 고리대출 차단

사업 시행자에 대한 자금재조달 요구권도 강화

교각의 길이만 4.4㎞에 이르는 영종대교 위로 차량들이 속도를 내면서 달리고 있다. 정부는 최근 5년간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조항에 따라 4,000억원에 이르는 혈세를 지원했다. /서울경제DB



# 2009년 대법원은 국토교통부에 서울~춘천 민자 고속도로의 하도급 거래내역을 공개하도록 판결했다. 내역은 가관이었다. 현대산업개발 등 5개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서로 경쟁입찰을 피하고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사업을 함께 따냈다. 5개사는 시공권을 나눠 먹은 뒤 다시 자신들이 수주했던 금액의 절반 수준(하도급률 기준 약 59%)으로 하도급을 줬다. 하도급비를 후려치기로 챙긴 차액은 무려 5,300억원. 그런데도 총사업비 중 86%대에 달하는 약 1조9,000억원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융지원 포함) 받았다.

통행료 거품 논란이 일고 있는 민자 고속사업의 낙맥상이다. 민간 투자자자들이 입찰담합과 유사하게 사업을 나눠 먹은 뒤 하도급 단가를 후려치는 방식으로 이득을 내고 나랏돈으로 수혈까지 받은 것이다. 주요 투자자들은 배당·이자수입 등을 통해 연 10%대에 육박하는 수익도 챙겼다. 통행료도 폭리 논란을 살 만큼 비쌌다.


그런데도 주요 민자 사업자들은 적자라며 정부로부터 사업당 연간 최대 수백~수천억원씩 적자보전을 받고는 했다. 물론 정부의 원죄가 더 크다. 정부가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며 과도하게 적자보전 혜택(최소운영수입보장·MRG)을 유인책으로 던져 지금의 말썽을 낳았다. 국가 재정부담을 덜겠다고 시작한 민자사업이 도리어 혈세는 혈세대로 축내면서 국민 호주머니를 터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셈이다.

정부가 최근 민자사업 관리방안을 마련한 것은 뒤늦게나마 민자사업의 부조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 정부에서도 민자사업에 대한 조정이 이뤄졌지만 단순히 자본구조를 일부 재편하는 수준에 그쳤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처방이 되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업제안·입찰-자본조달-하도급-사후 운영·관리'에 이르는 민자사업의 전 과정에서 제도보완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투자자 간 나눠 먹기를 조장하는 민자사업 제안·입찰단계 낙맥부터 손질하기로 했다. 민자사업 중 민간제안 방식 프로젝트에서는 사업제안자들이 서로 경쟁을 피하려고 '한 몸'으로 합쳐 단독입찰 구도를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예를 들어 A도로를 짓는 민자사업에 B컨소시엄과 C컨소시엄이 각각 뛰어들어 시행권을 따내려 경쟁했다가 갑자기 B컨소시엄이 C컨소시엄을 흡수합병해버리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B컨소시엄은 굳이 출혈경쟁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고수익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정부에 사업을 제안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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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사업 중 정부고시 방식 프로젝트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입찰개시 전에 서로 알 만한 큰손들이 서로 경쟁구도를 피하려고 컨소시엄을 구성해 단독응찰 구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정부는 민자사업 담합을 막기 위해 주무관청의 사전승인이 없으면 민자사업 제안자들이 서로 흡수합병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고시 방식 민자사업에 대해서는 단독입찰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민간이 경쟁 없이 홀로 응찰할 경우 해당 입찰을 무산시키고 재입찰에 부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자본조달 과정의 도덕적 해이도 엄격히 제한된다. 이는 서울의 우면산터널사업과 같은 부조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차원이다. 우면산터널사업 민자법인(우면산인프라웨이)은 수년 전 무려 연 20%대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맥쿼리인프라 등 대주주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방식이 이용됐다. 당시 정상적으로 시중에서 빌릴 수 있는 이자의 서너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우면산터널법인이 대주주에게 고리의 이자를 떼어줘 낮은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통행료를 높게 매겼다는 비판이 끊이지를 않았다.

정부는 이처럼 편법적인 대주주 이자 잔치를 막기 위해 민자법인들의 후순위채 발행 상황 등을 지속적으로 체크해 대주주로부터 불필요하게 고리의 대출을 받을 경우 시정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또한 민자법인이 선순위채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라도 가급적 대주주의 고리 대출이 아닌 시장의 정상 금리로 돈을 빌리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선순위채 등에 대한 적정 주주차입비율 기준 등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대주주들이 배당잔치를 통해 민자법인을 적자덩어리나 빈 깡통으로 만드는 악습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정부가 사업시행자에게 자금재조달을 주문하면 사업시행자가 이에 적극적으로 응하도록 주무관청의 요청권을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E라는 민자 도로사업의 대주주들이 과도하게 배당을 가져가 수익을 누린다면 대규모 감자를 하고 배당수익률보다 낮은 시중금리로 대출을 받도록 해 민자법인의 배당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다만 민자사업의 주주 구성에 따라 선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예컨대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민자사업의 수익률을 낮춰 통행료를 내린다면 해당 구간을 운전하는 일부 차량 운전자들을 위해 국민들의 노후연금 수익률을 포기하는 모순에 봉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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