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세용 현대상선 사장(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전문경영인)

◎10년 연속 흑자 창출 “작은 거인”/강한 추진력·친화력 바탕 노사안정 추구/조선소·선박수주 등 해외시장 개척 선봉/95년부터 종합기획실장직… 국내 최대 선사 도약 지휘도작은 키(본인주장 1m67㎝)에 매서운 눈초리, 야무진 얼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박세용 사장(57)의 첫인상이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을 대표하는데 손색없는 박사장은 국내 최대그룹인 현대에서도 요직으로 꼽히는 종합기획실장직을 95년부터 맡고 있다. 현대그룹에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그룹운영위원회의 간사도 맡고 있다. 그는 그룹내 최대인맥인 「건설출신」으로 경제성장의 양축이라 할 수 있는 해운과 무역관련 기업을 이끌고 있다. 해운불황으로 선주가 현대중공업에서 찾아가지 않은 배를 인수해 시작한 현대상선을 지난 10년간 연속 흑자경영을 이루면서 국내최대 해운기업으로 도약시켰다. 현대종합상사를 1백억불 수출탑수상(95년), 국내수출 1위(96년), 1인당 매출액 1위기업(96년)으로 성장시키는데도 주역으로 활동했다. 민족학교인 오산고등학교(59년)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63년)한 박사장은 지난 67년 현대건설에 입사,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기업인생은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만들어낸 한편의 「신화」다. 30대(37세)에 상무, 40대(48세)에 사장으로 승진하는 초고속 성장의 주인공이다. 입사 10년만인 77년에 현대건설 상무를 맡았고, 다시 10년만인 87년에 현대상선 부사장을 거쳐 88년에는 사장에 올라 최고경영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91년부터 현대종합상사사장을 겸하고 있다. 박사장은 「더불어 사는 경영」이념으로 상선과 종합상사의 안정된 노사관계를 이끌어 냈다. 특히 그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추진력,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프로경영인상을 정립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한­호주 경제협력위원장, 한­파키스탄 경제협력위원장, 탄자니아 명예총영사, 대한수영연맹회장 등을 맡고 있다. 공식직함만으로도 그룹내외에서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박사장이 그룹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현대건설에 입사한후 세계적인 프로젝트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만공사의 입찰 및 건설에 직접 참여하면서 부터다. 이후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조선소 도크건설부터 해외선박수주 등 초창기 현대중공업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81년부터 현대종합상사에 근무하면서 플랜트사업 등 취약분야의 해외시장 개척을 이끌었으며 지난 94년에 해외지역본부장제, 지난해에는 국내기업중 처음으로 사외이사제를 도입,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지난 83∼87년 5년간 현대상선에 44척의 신조선박을 투입하는 공격적 경영으로 상선을 국내 최대선사로 도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9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정주영후보의 브레인을 맡아 활동하다. 잠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곧바로 그룹에 복귀,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채수종> □약력 ▲40년 경남밀양산 ▲6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67년 현대건설 입사 ▲87년 현대상선 부사장 ▲88년 〃 사장(현) ▲91년 현대상사 사장(현) ▲95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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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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