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파업을 위한 협상

김현수 산업부 기자

노사협상은 파업이라는 최악의 국면을 피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LG칼텍스정유 노사의 협상과정은 이와 다르다. ‘파업을 위한 협상’이라는 인상이 짙다. 한달 정도 끌어온 이번 임금협상에서 LG정유 노사 양측은 서로의 의견을 좁히기 보다는 명분찾기에 급급했다. 내수침체 등 어려운 국가경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자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참여정부 들어 관속으로 들어가고 있던 ‘직권중재’제도까지 부활시켰다. 그리고 노조는 지난 18일 자정, 사상 첫 정유업체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노동귀족의 배부른 투쟁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LG정유 노조가 공장 조종실 점거까지 들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노조측은 강경투쟁의 이유를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공동투쟁’이란 명분이 우선시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애초 협상 시작부터 민주노총 소속 18개 사업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여수공동투쟁본부의 총파업 일정 짜맞추기에 들어가며 파업을 위한 협상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또 LG화학 여수공장 등 ‘공투본’의 또 다른 축들이 임ㆍ단협에 잠정합의하며 남아있는 LG정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도 ‘갈 때까지 가보자’란 식의 강경투쟁을 이끌고 있다. 정작 분규의 핵심인 임금인상률과 주 5일 근무제는 공동투쟁이란 명분에 파묻혀 아예 협상의 전면에 부각되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측의 어설픈 대응도 사상 초유의 정유사 파업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밀고 당기는 협상보다는 고연봉과 상대적으로 좋은 근무여건만을 내세워 노조를 자극하고 있다. 협상시한을 남겨놓고 직권중재 요청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사측의 불법파업 유도’라는 빌미를 제공했다. 최근 들어 우리 기업들은 내수침체ㆍ고유가ㆍ중국발쇼크 등의 여파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잘 나가고 있는 수출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최근 한국수출의 증가는 중국에서 조립한 제품을 부산으로 실어와 내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앞에서 밀고 뒤에서 당기는 상황에서 소모적인 갈등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대한민국 기간산업 가운데 하나인 LG정유가 전면파업에 돌입하면 에너지 대란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노사가 이제라도 타협을 위한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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