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재정법’에 경기변동에 따라 국채 탄력발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포함시킨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몇 년간 적자재정 감수가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현행 단년도 ‘세입 내 세출’이라는 재정운용원칙 아래에서는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과열되는 경기변동 폭을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경기진폭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
특히 여당이 국회의 재정통제권 약화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정부에 국채발행 결정권을 상당 부분 위임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은 지난 8월30일 당정회의에서 감세와 세출을 혼합한 경기부양안이 재정적자 악화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지나치게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국가채무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국세감면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보완장치를 마련한 흔적도 엿보인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협의회에서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의 일부 내용을 통폐합해 정부재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가재정법’ 제정 시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적자국채 발행규모를 국회가 의결해준 한도를 초과해 ‘12조원’ 안팎의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임의ㆍ조정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강봉균 우리당 의원은 정부가 마련한 국가재정법 시안 내용 중 주요 쟁점 사안이 되고 있는 ‘경기변동에 대비한 적자국채의 탄력적 발행 허용’과 관련, “‘탄력적’이란 단어가 애매모호하니까 아예 국채발행 허용범위를 제정안에 명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GDP의 1.5% 내’로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 법안에는 경기불황으로 세수가 당초 세입예산에 미치지 못할 경우 국회에서 의결한 발행한도를 초과해 추가 국채발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반대로 경기호황으로 세수가 세입예산을 초과할 경우 국채발행을 축소한다고 돼 있다.
강 의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정부는 2003년 말 GDP를 기준으로 할 때 12조원까지 국채발행 규모를 임의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최근 기획예산처와의 당정협의에서 확정된 내년도 적자국채 발행규모가 6조8,000억원임을 감안할 때 내년에 5조원 이상의 범위 내에서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이처럼 국채발행 규모를 정부가 탄력적으로 조절할 경우 국회의 재정통제권이 약화되고 국가채무가 확대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예산처는 미국ㆍ영국ㆍ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도 세출예산 집행과정에서 세입이 부족할 경우 일정 범위 내에서 국채발행 또는 차입을 통해 충당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강 의원도 “세출예산안을 국회가 승인한다는 자체가 재정 운용권을 정부에 위임하는 것”이라며 “국가재정법 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이어 “예산안을 한치의 오차 없이 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세입이 줄고 세출이 늘어나는 국내 재정상황을 감안할 때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적자국채 발행한도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당정은 추가 논의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을 법안에 명시할지 여부를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이밖에 정부의 회계ㆍ기금간 상호 전입ㆍ전출을 허용할 경우 특별회계ㆍ기금의 고유 설치목적에 위배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예산처는 국민연금ㆍ공무원연금 등 연금성 및 보험성 기금은 전출입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설치목적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유재원을 활용하는 것이 통합재정 기준의 효율적 재정운용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