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사회가 경제적으로 향상됐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누리게 된 경제적 발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예컨대 1811년 영국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 1846년 영국의 곡물법 폐지에 반대한 지주들의 데모, 1848년 독일 슐레지엔 지역 리넨공장 직공들이 일으킨 데모에서 보듯 경제적 발전으로 가장 덕을 본 계층 사람들이 항상 경제적 발전을 반대했다. 그 뒤에서 조종하고 개인적인 권력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리처드 아크라이트가 발명한 방적기계에다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공장을 소유한 소위 ‘기계를 가진 자’가 등장하자 영국 사회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방직공장 소유주는 여자들이나 아이들 대여섯 명만 데리고 기계로 일하면 건강한 남자 직조공 100명이 일하던 것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또한 기계는 밤낮 없이 일할 수 있었고 일이 없을 때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세워둘 수 있었다.
섬유기계 한대를 설치하자 100명이나 되는 도시의 수공업 직조공이 갑자기 실업자가 됐다. 기계를 가진 자가 100명의 굶주린 숙련공들에게 말한다. “기계와 공장을 돌볼 다섯 명이 필요하다. 얼마를 주면 일하겠는가.” 한 사람이 얼른 대답했다. “그전에 받았던 만큼을 원합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불쑥 말했다. “저는 매일 빵 한 덩어리와 감자 1㎏을 살 수 있으면 족합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빵 반 덩어리에 감자 500g이면 일하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한꺼번에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를 가진 자는 하루 빵 반 덩어리와 감자 500g이면 된다는 사람들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가라고 했다. 여럿이 남았고 또 여럿은 떠났다.
남은 사람들에게 공장주는 말했다. “여러분 좋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겠소?” 한 사람이 답했다. “하루에 열 시간이요.” 다음 사람이 말했다. “열두 시간이요.” 기계를 가진 자가 말했다. “좋소. 열두 시간 일할 사람만 남으시오.” 몇은 남고 몇은 떠났다.
기계를 가진 자는 남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잠자는 동안 기계는 뭘 하지? 기계는 잠잘 필요가 없는데.” 남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여덟살 난 내 아들을 보내겠소.” 기계를 가진 자가 물었다. “애한테는 얼마를 주면 되지?” 그 사람은 절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버터와 빵 값만 주세요.” 기계를 가진 자가 말했다. “버터 값은 빼겠네.” 기계공 다섯 명을 모집하는 일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이제는 직조공 500명의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들이 더 싼 값에 등장했다. 게다가 노동자에게 가장 적은 임금을 주는 악덕 공장주가 생산한 제품이 가장 쌌기 때문에 도시 소비자는 악덕 공장주가 생산한 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했다.
산업사회 초기의 이런 정경을 상상하면 기계를 가진 자들, 즉 자본가들의 횡포에 공분을 느낀다. 그러나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이제 방적공장은 컴퓨터 앞에 앉은 사무원 몇 명을 제외하면 육체근로자를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완벽히 무인자동화 시스템으로 가동한다. 방적공장 노동자들의 후예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초기 산업사회보다 더 못사는가.
요즘 전세계적으로 아웃소싱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음식을 먹다 남기면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꾸중했다. “너희들은 음식을 남기면 안 돼. 지금 인도와 중국 같은 후진국에는 굶는 아이들도 있어. 하루 1달러로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선진국의 어머니들은 “너희들이 공부를 좀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인도나 중국의 젊은이들이 보다 싼 임금으로 일자리를 빼앗아갈 거야” 하고 걱정한다. 내 일자리는 내가 지키지 못하면 기계가 빼앗아 가든지, 아니면 개발도상국의 다른 젊은이가 빼앗아 간다. 일자리는 정부가 지켜주지 못한다. 지방분권정책이나 수도권 규제로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