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미술 시장의 도덕성

갤러리들이 때아닌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웬만한 기업 비자금 수사마다 갤러리들이 단골 손님처럼 끼어 있다. 몇 년 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에 이어 얼마 전 한화그룹 비자금 조사 때도 갤러리가 인구에 회자되더니 이번에는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에도 갤러리가 자금을 세탁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귀국해 수사를 받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로비 의혹 사건에도 갤러리들이 압수수색을 받았고 지난주에는 저축은행의 불법 대출에도 갤러리가 동원돼 갤러리 대표가 입건됐다. 재벌·갤러리의 밀월관계 드러나 갤러리와 재벌과의 '어두운' 거래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면서 갤러리들이 비리의 온상인 듯한 이미지로 인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몇몇 갤러리에만 국한된 일이라지만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갤러리와 기업 비자금은 연관 검색어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이 예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로비용 뇌물, 비자금 조성, 대출용 담보 등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되는 이유는 공정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희소가치를 내세워 부르는 게 값일 수 있는 데다 이미 작고한 화가의 작품이거나 해외 작가의 작품인 경우 더욱 적정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또 세금이 붙지 않는 것도 원인이다. 미술품은 거래시 양도 소득세나 취득세ㆍ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전혀 낼 필요가 않으니 작품이 언제, 누구에게 사고 팔렸는지가 투명하지 않아 자금 세탁이나 탈세, 그리고 뇌물의 수단이 되기 쉽다. 부유층에서는 불법 상속이나 증여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미술품의 음성적 거래를 막기 위해 추진됐던 양도세 부과는 지난해 말 오는 2013년으로 유예됐다. 한 갤러리 대표는 "양도세 부과 문제가 겨우 해결됐는데 또 이러한 상황에 놓이니 할 말이 없다"며 "일반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나빠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갤러리들의 잇단 비자금 구설수가 2년 후로 유예됐다고는 하지만 양도세 부과 논란에서 미술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쯤에서 미술계는 과세와 투명거래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미술계는 양도세 부과가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미술 시장에 실익은 없으면서 컬렉터들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와 타격만 줄 것이라고 주장해 과세가 유예됐다. 하지만 미술 시장은 이미 페어, 경매, 마켓 프로모션, 블루칩 같은 경제 용어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 매커니즘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공정가격, 투명거래, 과세 등의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투명거래 역시 미술계가 고려해봐야 할 사안이다. 정부는 양도세 과세 논란 때마다 "미술계가 반발하는 것은 양도세가 아니라 고가 미술품을 사는 사람의 신원과 소득 누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반박해왔다. 미술품 거래가 활발한 유럽의 경우 고가 미술품에 대해 소장이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명화 한점에는 진위감정부터 거쳐간 소장가 정보가 모두 기록된다. 프랑스는 신원이 보장된 감정사가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위촉감정사제도'도 두고 있다. 시장 투명성 높일 방안 강구해야 아직 우리 미술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술계도 불법에 대한 최소한의 방지 장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때 부도덕한 집단으로 도매금으로 매도되지 않을 수 있다. 도덕적인 잣대는 뒤로 하고 시장 파이를 먼저 키울 것인지 아니면 먼저 도덕성을 갖추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시장을 키울 것인지,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는 것만이 발전은 아니다. 미술품을 소장하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대중이 많아진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공정한 룰을 적용 받는 일이 훗날에 보면 한국 미술 시장의 발전에 또 하나의 발자국으로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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