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 타결에 대해 우리 정치권을 중심으로 '굴욕 협상'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번 협상의 '최대 피해자'인 자동차업계는 오히려 북미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어졌다고 반기고 있다. 협상결과가 당장 국내 자동차의 미국 수출과 내수 판매에 피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불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가 환영하는 협상결과를 굴욕적 협상이라고 반대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철저한 국익확보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FTA는 상대가 있는 무역협상이다. 상대방이 의지가 있고 준비가 되었을 때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것이 FTA다.
무조건 반대는 국익에 도움 안돼
FTA와 같은 무역협상에서 국내의 반대와 반발이 무조건 협상결과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협상과정에서의 국내 이익집단의 반발은 때로는 협상결과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끄는 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협상자원이 되기도 한다. 국내적 반대는 상대방의 양보를 강하게 요구하는 근거로 활용되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이 타결된 후에도 국내적 반발과 반대가 지속돼 FTA의 발효가 지연된다면 FTA 체결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적 선점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무역자유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 추락하게 된다.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의 행보가 그런 경우다. 한미 FTA는 지난한 협상을 거쳐 2007년 6월에 서명됐으나 이후 3년5개월 동안 미국 자동차업계와 축산업계의 강력한 압력과 로비로 인해 그동안 미국 국내정치의 볼모로 잡혀있었다. 대선기간 동안 한미 FTA 협정문이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서 줄곧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식도 중요한 걸림돌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발생한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 또한 한미 FTA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최악의 경제위기와 실업난을 겪으면서 한미 FTA의 중요성에 대한 학습효과를 톡톡히 치뤘다. 미국경제의 침체와 실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에 결코 자국 경제와 노동자들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쇠고기라는 특정 이슈에 매몰되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우리나라와의 FTA를 방치하고 4년 가까이 허송세월한 것이 미국의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한미 FTA를 반대했던 자신의 입장변화를 정당화하고 의회와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새로운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추가협상을 통해 우리나라로부터 자동차 부문에 대한 양보를 이끌어내는 모양새를 만들어냄으로써 미 의회와 이익집단에 한미 FTA 비준을 요구할 명분과 정치적 자산을 확보했다.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협상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이 협상결과를 우리보다 먼저 자신들의 승리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이나 휴일이던 지난 4일 백악관에서 특별 회견을 통해 추가협상 결과가 미국 노동자와 농민 등을 위한 승리라고 평가한 것은 모두 국내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다.
아쉬움 접고 비준 이후 대비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추가협상 결과가 2007년 타결된 원안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게 없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진작부터 한미 FTA를 지지했어야 한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추가협상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협상타결을 계기로 한미 FTA는 폐기처분 직전의 상황에서 벗어났고 미 의회의 한미 FTA 비준의 정치적 동력은 다시 마련됐다. 이제 한미 양국은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하루 빨리 국내 비준과정을 거쳐 한미 FTA를 발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