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영(李錫瑛)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은 WTO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지난 94년 4월12일 모로코 마라케시. 세계 120여개국의 각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7년여 전인 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시작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을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각료들은 3일간의 회의 끝에 UR 최종협정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WTO체제라는 새 무역질서가 태동했다.
◇국제무역에 관한 UN=WTO체제는 UR협상 결과 새로운 무역질서를 규율하기 위해 8개월여의 완충기간을 거쳐 95년 1월1일 정식 출범한 기구다.
WTO의 탄생은 급변하는 무역환경에 부응해 신(新)무역규범을 보다 강력하게 이끌어갈 새로운 국제무역기구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회원국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GATT는 일반적으로 국제기구로 오해돼왔으나 협정을 효율적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마치 국제기구처럼 운영해온 임시체제에 불과했다. GATT의 기능은 상품교역과 관련한 관세인하 차원에 머물렀다.
반면 WTO는 전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상품교역 외에 서비스·지적재산권·투자 등 GATT가 전혀 다루지 않았던 새 분야들을 포괄하고 있다. 더욱이 섬유교역 규제, 농산물 교역의 예외 적용, 수출 자율규제 등 과거 GATT체제하에서는 용인돼온 보호무역조치들도 자유화대상에 대거 포함시켰다.
박노형(朴魯馨) 고려대 법대교수는 『WTO체제는 GATT의 기능을 크게 강화했을 뿐 아니라 조직과 체계 면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과 같은 국제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춰 국제무역에 관한 UN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달리 말해 WTO의 출범은 2차세계대전 후 선진국들이 세계경제의 재건과 교역확대를 목표로 추진한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삼두(三頭)체제를 완성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지난 43년 브레튼 우즈 협정을 체결해 외환 분야의 IMF, 경제개발 분야의 IBRD와 함께 국제무역 분야의 국제무역기구(ITO)를 설립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ITO 설립은 무산돼 ITO 발족에 앞서 임시로 GATT체제가 48년 가동됐다.
결국 WTO는 ITO의 뒤늦은 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밀레니엄 라운드 논의동향=밀레니엄 라운드는 벌써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새 협상의 범위와 방식·일정·이슈 등을 어떻게든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고 사전 정지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개최된 1, 2차 각료회의와 각종 회의결과를 종합해보면 협상방식은 유럽연합(EU)·일본·캐나다의 주장대로 여러 의제를 함께 다루는 포괄협상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부문별 협상방식을 고집해온 미국과의 싸움에서 일단 EU가 이겼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UR 이후 부문별 협상방식으로 진행된 정보기술협정(ITA)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점을 들어 포괄적 협상을 주장하는 EU와 맞서 있었다. ITA는 정보기술 제품의 관세를 2000년 1월1일까지 철폐하자는 약속이다.
EU·일본·캐나다 등은 밀레니엄 라운드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농업·서비스 등의 개방만을 논의하는 것보다 여러 의제를 한꺼번에 다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협상방식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호주·뉴질랜드·아르헨티나 등 14개 중견국가들로 이루어진 뉴라운드 우호그룹(FRIENDS OF A NEW ROUND)들도 포괄적 협상방식을 지지했다.
협상방식 못지않게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것이 뉴 이슈(NEW ISSUES)다.
밀레니엄 라운드에서 논의가 확정된 것은 세 분야다. WTO협정에는 이른바 기설정의제(BUILT-IN-AGENDA·BIA)가 포함돼 있다. BIA는 WTO협정 발효 후 3∼5년 사이에 많은 협정에 대한 재검토와 재협상을 하도록 명문화하고 앞으로 있을 무역자유화 협상의 방향도 규정하고 있다.
BIA가 규정하는 농산물과 서비스의 추가 자유화 협상 및 지적재산권 협정의 부분적 협상은 밀레니엄 라운드와 함께 시작될 예정이다. 기존 라운드부터 단골로 취급돼온 공산품 관세인하에 대한 논의는 필수과목처럼 다시 포함됐다.
국제통상전문가들은 이밖에도 환경·노동·국제투자·경쟁정책 등 일명 신통상의제(NEW TRADE AGENDA)도 다뤄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친다.
이는 그동안 무역 관련 문제만 다뤄온 세계 각국에 생소한 이슈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뇌물수수 및 부패관행도 새 이슈로 대두된 상태다.
지난해 5월 스위스 제네바 제2차 WTO각료회의에서 별도의 각료선언으로 채택된 전자상거래도 새 이슈 중 하나다.
새 이슈들은 생소한 만큼 WTO 가입국가들에 시련과 부담을 안겨주는 동시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국들은 밀레니엄 라운드의 협상기간을 3년으로 못박고 있다. 속전속결로 끝내자는 주장이다.
이시형(李是衡) 통상교섭본부 WTO 과장은 『3년이라는 협상기간에 대해서는 다른 회원국들간에도 컨센서스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동석기자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