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젊은 과학도의 소명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후 저개발국가에 대한 공적개발원조의 규모는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흔히 국제 개발협력을 위한 한국형 모델로 새마을운동과 같은 취락지구 개선 사업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은 이공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한 인력 배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이 직접 경험했던 이 같은 발전 요인은 원조를 통해 저개발국가에 제공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바로 젊은 과학도의 참여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우리나라의 젊은 과학도를 발견하기는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 고등교육에서 실험 및 실습을 통한 대면교육이 중요한데, 우수한 젊은 과학자에게 현지에 장기간 체류하며 강의 및 교육 봉사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따라서 과학 분야의 국제 개발협력은 현재 은퇴한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헌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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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국내의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국제 개발협력에 참여할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 현지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 적정기술에 대한 연구는 국내의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이 국제 개발협력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런 적정기술에 대한 연구로는 사회간접시설 기반이 없는 지역에서의 통신시설 개발, 전원이 필요 없는 전자장비의 보급, 지역 실정에 맞는 에너지원 생산기술, 지속 가능한 정수장비 시설, 손쉽게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보건 분야에 대한 연구 등 농업·건설·식품 분야 등 거의 산업 전 분야를 포함한다.

문제는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 개발 동기를 어디에서 찾는가와 관련돼 있다. 이 점에서 정약용이 약관 30세 즈음에 조선시대의 건축역사를 바꾼 거중기와 수레를 발명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발명의 동기가 임금의 명이었는지, 무거운 돌을 날라야 하는 평민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관직에 나서기 전에 이미 집안일을 해주던 평민의 생계를 위해 솜틀기계를 발명해 건네준 젊은 정약용의 모습에서 살펴볼 수 있듯 소외받는 인간에 대한 측은심은 그의 과학자적 소명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의 과학기술 분야의 동기 부여가 선진국의 연구 분야를 추종하는 형태로만 이뤄지고 있는 점은 자못 기형적이다. 같은 연구를 수행해도 연구의 목적과 계기가 소외받은 사람의 현실에서 기인한다면 과학기술이 절대빈곤, 기후변화와 환경, 전염병 등의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가에서 이러한 연구를 독려해 그 성과물을 공적개발원조로 현지에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더욱 활발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엔지니어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자이기도 한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추진하면서 빈자와 부자 모두에게 기여하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역설한 것이나, 정약용이 발명을 통해서 사회에 공헌하고 나아가 목민심서 등의 저술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역설한 점은 가난하고 어려운 삶과 생명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정치적·이념적 지향으로까지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우리 젊은 과학도들이 추구해야 할 일생의 오롯한 사명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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