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기축통화 위상 흔들… 개도국 煥위험 일방노출최근의 환율불안은 개도국의 위기상황이나 우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 세계금융체제의 근본적 취약성 때문이다.
즉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체제 이후의 구조적 문제점을 주요국들이 임시방편으로 대응해온 결과다.
그동안 환율안정을 위한 국제적 합의나 국제금융기관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실상 구조적인 차원의 대응은 소홀했다. 주요국들은 달러화 위주의 금융체제에 모두가 의존했고 미국은 독점적 위치에서 지나치게 소비를 늘렸다.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경기에 더욱 의존하게 된 개도국들은 기축통화 불안의 피해에 일방적으로 노출된 채로 당장의 성장에 만족했다.
그 결과 소위 금융안정을 위한 명목기준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혔던 기축통화는 자체적인 문제로 인해 신뢰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강한 달러정책의 체제적 문제점이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의 성장세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미국경기는 달러화의 자체조정이 없을 경우 회복세의 시현 여부에 관계없이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5%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조정 없는 회복은 오래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일시적 회복기미를 배경으로 미국은 본격적인 달러정책의 전환시점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더 달러 값이 떨어질까.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적정 수준인 GDP의 2.5% 이내로 조정되려면 앞으로 2~3년간 20% 이상의 추가절하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미국경제와 달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개도국이 겪게 될 피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달러약세와 함께 주요 기축통화의 지위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외환위기 후 개도국들은 금융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외화자산 보유비율을 늘려왔다.
달러화의 확보를 안전성의 확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축통화의 가치가 불안해지고 있다는 점은 이제 다른 차원의 위험관리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달러ㆍ유로ㆍ엔화 등 세계3대 기축통화가 한결같이 약세를 선호하고 있어 불안요인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달러가 강세를 회복하더라도 전반적인 기축통화의 약세구도 하에서 특정 화폐의 강세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문제의 심각성은 세계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구조적 문제로 포트폴리오 조정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금융자산의 대부분이 기축통화로 표시된 상황에서 기축통화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는 매우 어렵게 됐다.
선진국들은 환율안정을 위한 정책공조를 통해 최소한의 조정부담을 치러내면서 상당 기간 현 금융체제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상적 환율안정을 경쟁력 회복으로 착각하기 쉬운 개도국들의 불안은 생각보다 크다. 더욱이 경기회복이 지연된다면 자국 일자리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드세질 것이다. 개도국에 근린궁핍정책(beggar- thy-neighbor policy)이 강요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환율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대외 의존적인 우리 경제에서 환율변화를 완전 방치하거나 시장개입에만 치중하기도 곤란하다. 대응전략은 크게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외환보유고보다는 다변화된 산업기반이 우리 경제에 대한 대외신뢰를 지켜준다는 점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외환을 쌓아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대외지불 능력을 과시해왔지만 보유외환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위험관리 시점이 도래했다는 얘기다.
정부뿐만 아니라 금융기관과 기업이 안고 있는 외환 포트폴리오상의 위험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비상계획 차원의 위험관리대책도 심도 있게 강구돼야 한다.
둘째, 달러화 위주의 금융체제에 편입되면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책수단만으로 금융안정과 경제안정 기조를 지킬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자유로운 자본 유출입으로 독자적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크게 저하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한차원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궁극적으로 통화통합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인 금융시장 발전전략과 함께 개별국가의 구조적 문제와 환율급변의 피해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역내 금융협력이 강조돼야 한다.
최공필<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