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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건설 르네상스] 성장·침체 그리고 재도약… '파란만장' 해외진출 반세기

65~74년 현대건설, 泰고속도 첫 수주
75~83년 중동 건설 붐으로 '확장기'
84~92년 유가하락에 중동 실적 급감
93~97년 亞지역 중심 해외건설 활기
98~03년 외환위기 거치며 위기 봉착
04~현재 해외플랜트 수주 폭발 '중흥기' 한국 건설업계는 지난 1965년 첫 해외진출 이후 반세기 동안 순탄한 길만을 걸어오진 않았다. 누적 수주 5,000억달러 달성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침체, 그리고 재도약의 뼈를 깎는 과정을 겪어왔다. 건설업계의 해외진출은 1965년 현대건설의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 수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개척 시대에 돌입했다. 1974년까지 10년간 개척기 해외건설 시장은 베트남과 동남아시아가 전체의 78%를 차지했다. 공종별로는 토목(67%)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 시기 수주의 원동력은 ▦군납시설 공사와 차관건설 공사를 통한 경험 축적 ▦건설외교 추진 ▦풍부한 건설인력 확보였다. 특히 베트남 지역의 한국군 참전으로 군 관련 공사가 특수를 누렸다. 19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1호 프로젝트를 수주해 아시아 중심에서 중동으로 수주지역이 전환하는 계기도 마련됐다. 1975년부터 1983년 사이의 '확장기'에는 중동 수주 붐에 따른 양적팽창이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석유파동과 산유국의 막대한 외화 유입으로 인프라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1981년에는 총 137억달러를 수주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외건설 강국으로 도약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원도 든든했다. 1975년 정부는 해외건설촉진법을 제정해 건설업체의 해외진출에 날개를 달아줬다. 또 민간 건설업체 25개로 구성된 '한국해외건설주식회사'가 설립돼 컨소시엄이 결성되기도 했다. 만개했던 해외건설은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침체기를 겪는다. 유가하락으로 석유수입이 감소한 중동국가의 발주가 줄었고 국내업체들도 기술한계, 신시장 개척 미흡, 건설노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1988년에는 해외수주가 16억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993년부터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건설이 활기를 되찾았다. 1995년을 제외하고는 해외 수주금액이 다시 70억달러 수준으로 뛰었다. 시장 다변화도 진전됐다. 유럽과 북미ㆍ태평양 지역 수주 비중이 8.5%, 6.7%로 늘었다. 아시아 수주 비중은 64.7%였다. 플랜트 공사 수주 비중도 33.7%까지 늘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토목ㆍ건축 분야 수주는 급격히 감소했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의 투자개발형 사업 비중이 늘어난 것도 이 시기부터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해외건설은 외환위기에 따라 자금조달의 어려움이 커지며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아시아 중심의 투자개발형 공사 비중은 전 시기(1993~1997년) 20.8%에서 1.76%로 급감했다. 업계의 수익성 위주 영업전략으로 플랜트 EPC(설계-자재구매-시공)가 해외 수주 주공종으로 등장한 것은 이때부터다. 고난 뒤 기회가 찾아왔다. 해외 건설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해외 플랜트 수주의 폭발적인 증가로 '중흥기'를 맞고 있다. 올해에는 해외수주 716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매년 연간 수주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공종별로는 중동 지역 발주 증가로 플랜트가 전체 수주의 69.4%를 차지했다. 토목ㆍ건축 부문에서 초고층빌딩ㆍ교량ㆍ터널 등 고난도 공사 수주가 이어지고 동남아시아 등 부동산 개발사업 수주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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