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에 가계부채가 복병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빚더미에 앉은 가계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실업 문제로 위축된 소비회복 속도가 한층 더뎌질 공산이 크기 때문. `초저금리`가 가계부채 부담을 상당부분 상쇄시켜 주고 있어 아직 큰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이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 가계부채 사상 최고=지난해 12월말 현재 미 가계부채 규모는 9조 달러를 돌파,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가구 당 약 9만 달러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셈. 이로 인해 1996년 이후 매년 100만명을 웃돌고 있는 개인파산도 지난해에는 사상 최고치인 154만명에 달했다.
이 같은 가계부채 문제는 미 경제의 3분의 2를 지탱하는 소비의 위축을 가져와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소득의 20% 가량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어 소비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 실제 미 경제가 지난 3분기와 4분기 각각 8.2%, 4%의 성장을 한 반면, 같은 기간 개인소비 증가율은 0~0.5% 미만에 머물러 본격적인 소비 회복세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특히 모기지를 뺀 가계부채의 40% 가량이 신용카드 빚이란 점에서 소비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공산이 큰 상태다.
◇그린스펀 해명 불구 금리인상 경우 타격 불가피=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저금리`와 `집값 상승`이 가계부채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3일 미 신용연합전국협회(CUNA)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미 가계수지가 모기지 리파이낸싱과 저금리 덕분에 양호한 상태”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지난 10년간 가계부채율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득 가운데 각종 금융비용을 통합한 총 금융채무비율은 지난 2001년 이래 거의 변화가 없어 가계부채 증가가 가계 재정 압박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금리가 오를 경우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모기지의 경우 75% 이상이 확정금리를 적용,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 부담이 없다지만 전체 부채의 40%를 넘는 4조 달러 가량은 금리 변동의 영향권 내에 있어 금리 상승시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 또 최근엔 주택담보대출 시에도 변동금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어 금리상승에 따른 피해는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웰스파고 증권의 손성원 수석 애널리스트는 “경제가 갑자기 후퇴하거나 금리가 치솟으면 대규모 부채가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창익기자 windo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