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남북경협 다시 난기류인가/황장엽 망명이후

◎개방파 입지 축소 도발적 자세 예상/재계 “악재 판단” 북과 접촉 일단유보남북경협 전선에 또다시 난기류가 형성되는가. 지난해 9월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경색됐다가 최근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던 남북경협 전선에 김정일의 측근인 황장엽 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망명함에 따라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다. 이에 따라 (주)대우 등 남북경협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번 사건이 그동안 추진해왔던 경협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이 사건의 불똥이 어디까지 번져 나갈지를 살피기 위해 정보망을 총동원, 사태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하순 통일원으로부터 북한 주민접촉 승인을 받은 LG상사, 동해통상, (주)태창 등 6개 기업들은 북한과의 접촉을 일단 유보하고 이번 사건의 파장점검에 분주하다. 재계는 일단 이번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돼 최근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경협사업이 또다시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를 또다시 악화시키는 악재임에 틀림없다』면서 『이 사건으로 인해 남북경협사업은 상당기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계의 이같은 분석은 북한이 황비서 망명을 계기로 체제유지를 위한 집안단속을 더욱 강화, 북한 내부 개방파들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한국에 대한 도발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에 따라 사실상 경협사업이 단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남포에 합영공장을 가동중인 (주)대우의 경우, 막바지 단계까지 진행됐던 기술자들의 재입북 문제가 무산될 것으로 보여 남북경협사업을 진전시키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대우의 관계자는 『지금도 남북경협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인데 황 비서의 망명사건으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하고 『특히 이번 사건으로 남포공단에 재방북키로 한 기술자들의 방북문제도 물건너 간 것이 아니겠느냐』고 우려했다. 재계는 그러나 이번 사건에도 불구,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역이나 경공업분야에서의 임가공사업 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북교역과 임가공사업은 현재 경제난에 빠진 북한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주요 수단인데다 미국과 일본 등을 의식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일방적으로 남북경협을 중단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고진갑> ◎황장엽 진술서 전문/“북 정치적으론 단결… 붕괴 위험성 없다/인민들 굶주리는데 이상사회는 불가능” 이기주 외무차관은 13일 황장엽 북한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지난 12일 북경주재 한국총영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한 직후 작성한 진술서를 공개했다. 다음은 진술서 전문. 우리 철자법 등과 다르지만 그대로 전재한다. 「나는 50여년간 조선로동당원으로서 성실히 일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조선로동당과 그 령도자의 두터운 사랑과 배려를 받아왔다. 따라서 조선로동당과 그 령도자들에 대하여서는 감사의 정이 있을뿐 사소한 다른 의견도 없다. 또 지금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좀 난관을 겪고 있다하지만 정치적으로 잘 단결되여 있기 때문에 공화국이 붕괴될 위험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남으로 넘어갈 것을 결의하게 되였다는 것을 알게되며 나의 가족부터 시작하여 내가 미쳤다고 평가할 것이다. 나 자신도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할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나만 미쳤겠는가 하는 것이다. 민족이 분렬된지 반세기가 넘었는데 조국을 통일한다고 떠들면서도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또 로동자 농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로동자 농민을 위한 리상사회를 건설하였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한편 민족의 적지않은 부분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관심없이 시위만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저로서는 리해하기 어렵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국 우리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좀더 넓은 범위에서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북을 떠나 남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내 운명에 대하여는 시대의 흐름에 맡기고 나의 행동의 평가는 력사에 맡기려고 한다. 나의 여생은 얼마남지 않았다. 나는 정치에서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어느 편에 서서 한몫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또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 가족들은 내가 오늘로 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가능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이번 일본을 방문하여 조총련의 존경하는 벗들이 극진히 환대하여준데 대하여 감사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 비길데 없다. 나를 아는 모든 벗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주기 바란다. 중국에서 일을 일으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중국 벗들에게 폐를 끼친데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한다.<황장엽 1997.2.12 김덕홍 19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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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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