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해 주주총회부터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SK·CJ·효성 등 이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4일 열린 국민연금 실무평가위원회 법사위는 횡령·배임에 연루된 기업인과 관련 범죄로 재판 중인 대기업 총수, 장수 사외이사 등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횡령·배임 행위의 경우 법원 1심으로 시점을 명확하게 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며 사실관계가 명확할 경우 검찰 기소 단계에서도 반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 한 번 이사 선임 반대 대상에 포함되면 최소 3년간 이사로 선임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오는 28일 이와 관련된 방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총수들의 임기 만료를 앞둔 대기업들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강원랜드·한진중공업·SKC 등 장기 근속 사외 이사를 다수 보유한 기업들이 주총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1,657억원의 탈세와 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 받았다. 이 회장은 현재 CJ CGV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으며 다음달 18일 임기가 끝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17일 기준 CJ CGV 지분 10.24%를 보유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오는 27일 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9월 계열사 자금 400억원을 창업투자사에 송금한 뒤 개인적인 선물·옵션 투자를 위해 횡령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았다. 최 회장은 현재 SK이노베이션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으며 임기는 다음달 10일까지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아들인 조현준 효성 사장은 지난달 9일 조세포탈과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조 회장과 조 사장은 임기는 다음달 18일까지다.
사외 이사들이 과도하게 장기 근속하고 있는 기업들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이들 기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주총 의결권 분석 기관인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현재 5년 이상 재직 중인 사외이사를 4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SKC·한진중공업·강원랜드·SK브로드밴드·SK텔레콤 등이다.
특히 고려제강의 최수성 상근감사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자리를 꿰차고 있으며 국도화학의 나정용 상근감사는 1999년부터 15년 가까이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또 고려제강·국도화학·동국제강·한화·현대산업·기아차·신영증권·안랩·삼성전기 등도 5년 이상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임원이 3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때 자의성이 개입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문제는 국민연금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며 "이를 위해 미국의 의결권 분석 전문기관인 ISS와 같은 국내 기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 결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705개 중 정기주총일을 공시한 215개사(30.5%) 주총 일정의 76.74%가 3월14일과 21일에 몰려 있다.
10대 그룹사 역시 이날까지 정기 주주총회일을 공시한 10대 그룹 소속 35개 상장사 중 31개사(88.6%)가 다음달 14일 오전에 주총이 몰려 있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