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속빈 古都 한양, 그리고 신서울


고고학 전공이라고 말하면 선망의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도 차후의 직업에 고고학을 제2선택으로 적어놓은 적이 있는 걸로 안다. 그렇지만 요즈음 한국에서 고고학을 한다는 것은 이래저래 고달프다. 그동안 개발고고학으로 호황(?)을 누리기는 했지만 정작 학문적인 연구가 지난한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고학자로서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정신을 떠받칠 중요한 유적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의 개발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상하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근래 서울 개발은 행여 후손들이 오늘날 고고학도들을 손가락질할 것 같아 두렵다. 많은 독자들은 숭례문도 복원되고 경복궁도 복원되고 한성(漢城)도 이제 점차 원형을 회복하고 있고 또한 덕수궁 보존을 위해 구 경기여고 자리에 짓기로 했던 미국대사관도 결국은 용산으로 옮기고 시청도 원하는 대로 못 짓게 만들어 놓고는 무슨 소리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그리고 문화유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은 대단히 특별한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초기 한성백제 수도시절 500년까지 합치면 1100년 동안 왕국의 수도로서 민족사의 정체성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고도(古都)이다. 그 장구한 세월 땅 속에 묻혀 있는 이 고고유산은 앞으로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절대적으로 보장할 우리의 자산이다. 옛날에는 불도저 같은 것이 없었고 집터는 높아야 한다는 이유로 집이 부서지면 그 자리를 평탄하게 해 다시 집을 지었다. 때문에 옛 한양의 땅 속에는 초기부터 심지어 현대까지의 집터들이 층위를 이루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시대의 트로이 유적이라고 할만한 역사시대 연속퇴적유적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흔적들이 최근의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다. 물론 발굴하고 부분적으로 보존하기도 하지만 많은 지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로마가 지상의 석조유구 때문에 지하가 보존되는 것과 달리 서울의 유적들은 개발 과정에서 하나둘씩 고층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사라지고 머지않아 서울의 유산은 수리를 거듭한 왕궁들만 남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1000년을 넘는 고도는 많지 않다. 고도의 역사가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난 유물뿐 아니라 우리 서울의 땅 속 언저리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서울브랜드'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미구에 중동 석유 매장자원보다 훨씬 값어치를 할 우리 문화자원이다. 정신이 있으면 안될 것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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