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 칼럼] 유능한 정부와 보편적 복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논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유능 여부이다. 정부가 많은 일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면서 정치 지도자와 공무원들이 무능하다면 문제해결은커녕 국민혈세만 낭비해 국가의 재앙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정부를 믿지 못하고 예산을 절약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조차도 손을 놓으면 결과적으로 열 배, 스무 배의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대처 수상 취임 이전에 영국의 노동당정부가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고 노조에 힘을 실어주다가 영국이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 일보직전까지 갔던 것은 전자의 예다. 반면에 미국이 금융규제를 포기하고 감독기관의 예산을 줄이다가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자초한 것은 후자의 예다. 우리나라가 가난을 딛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기여가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보다 뒤에 있는 개발도상국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의 경험을 배워보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정치가 민주화되고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면서 이 상태로 가면 과연 앞으로도 한국의 경험을 배우겠다는 후발국들이 계속 있을지 회의가 든다. 한국 따라 하기가 아니라 한국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내년 대선의 최대이슈가 될 것이라고 하는 복지논쟁은 우리 경제가 앞으로 10년 이내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신흥국 딱지를 계속 붙이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중차대한 기로가 될 것이다. 복지에는 무상이 없다. 국민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증세의 경우에는 담세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과 중장년층이 주로 부담을 지게 될 것이고 설령 세금을 걷지 않고 재정합리화를 통해서 조달한다고 해도 지출이 줄어드는 부문의 기업이나 국민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지의 확충은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성장과의 선순환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능한 정부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보편적복지론자들이 귀감으로 삼고 있는 스웨덴은 조세부담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큰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가 깨끗하고 유능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기업정책은 자유와 개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발렌베리그룹이라는 재벌이 국민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여론이 없고 경제는 거의 완전히 개방돼 있다. 이는 스웨덴의 위정자들이 복지국가와 활력 있는 경제성장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현명하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기업의 자유와 개방된 경제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인사들은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패지수가 스웨덴의 두 배에 달하는 행정수준을 개혁하지 않고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는 경우 생기는 국민세금 누수현상은 심각한 대정부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싱가포르 정부를 유능함의 모범으로 본다.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은 싱가포르의 생존전략으로 근면한 국민, 잘 갖춰진 인프라, 그리고 유능한 정부를 제시했다. 오늘날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가장 깨끗하고 유능하며 최고의 연봉을 받는 대신 싱가포르를 국가경쟁력 최상위국가로 올려 놓는 전위역할을 하고 있다. 리 수상은 의료복지를 설계하면서 영국이 국민 모두에게 평등하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비실용적이고 미국의 의료보험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싱가포르는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실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금융허브도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명운이 걸린 향후 10년은 부디 유능하고 깨끗한 정부가 앞장서서 그 길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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