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번역은 세계화의 문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뒤 첫 수상을 지낸 자와할랄 네루는 "영어는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창문 없이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없듯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제대로 조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영국의 식민주의를 경험했으면서도 네루는 이렇게 세계 무대에서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 몫을 하는지 깊이 깨닫고 있었다. 네루가 이 말을 한 지도 벌써 반세기 지난 지금, 영어는 더더욱 그 중요성이 커져 국제어ㆍ세계어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컴퓨터가 발명되고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영어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빌 게이츠가 처음 PC 운용체제를 영어로 만들면서 이제 영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예 포털사이트에 들어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문 대조하고픈 번역서 적잖아 그래서인지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영어를 배우려는 나라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네팔ㆍ중국 등 아시아 나라들이 그러하다. 몇몇 국가들은 글로벌 추세에 발맞춰 아예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영어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시피 하다. 영어로만 교육하는 유치원이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면 대학에서도 영어로 강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 서너 살 아이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붐을 이루더니 지금은 한두 살짜리 젖먹이를 위한 고급 영어학원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회사원들에게 영어를 강조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조기 영어 교육과 성인들의 영어 교육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물론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 효과다. 영어를 배우는 데 드는 비용과 그것에서 얻는 효과를 좀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계산해봐도 영어를 배우는 데 쏟아붓는 비용은 엄청난데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듯하다. 그 엄청난 비용과 시간과 정력을 다른 곳에 사용하면 국력은 훨씬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꼭 필요하다. 외교관ㆍ통상전문가 등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얼마 전 막상 그러한 사람들은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편 대부분의 국민은 영어를 해독할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학교 교과과정을 정상적으로 밟은 사람이라면 아마 이러한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원서 대신 번역서를 읽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는 양질의 번역서를 출간해야 한다. 시중에 있는 몇몇 번역서를 읽다 보면 원문을 대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일본 근대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번역서를 읽으면서 원문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번역은 일단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원문을 잊은 채 쉽게 읽히는 번역이야말로 좋은 번역이라는 말이다. 양질 번역서 낼 전문가 양성해야 이렇게 양질의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제로 무장한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근대 개화기 때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전문 번역기관을 설치해 체계적으로 번역을 주도했다. 우리도 그러한 전문기관을 설치해야 한다. 네루의 말처럼 영어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라면 번역은 세계화 시대에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문'이다. 이 문을 나서지 않고서는 국제화 시대의 정신을 제대로 호흡할 수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