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대학 구조 개편 시급하지만… 관치 우려도

국립대 총장직선제 폐지 논란<br>"잇단 잡음·운영효율 저조" <br>정부서 본격 칼 빼들어 교대·교원대 등 공모제로 전환<br>공직선거법 엄격한 적용등 유지하면서 보완 목소리도

교원 수가 100명 안팎인 교대는 편가르기나 나눠먹기 등 총장 직선제의 폐해가 더욱 심해 공모제 도입이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이주호(오른쪽 5번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8개 교대 및 한국교원대 총장이 총장 직선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구조개혁추진 업무협약을 맺었다.

총장 직선제가 박물관 속으로 들어갈 운명에 처했다. 한때 국내 거의 모든 대학이 실시했던 총장 직선제는 지금은 국립대와 일부 사립대에만 남아있다. 정부와 재단으로부터 독립해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에서 파벌 형성, 공약 남발로 인한 재정 낭비 등의 폐해가 나타나자 사립대들은 대부분 간선제와 임명제로 돌아섰다. 20년 이상 국립대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온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기 위해 정부가 칼을 빼들자 교대ㆍ교원대가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규모가 작은 다른 국립대들도 정부 방침에 동조해 직선제를 폐지하고 공모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교원 수가 많은 지역 거점 국립대들은 끝까지 저항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력으로부터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직선제를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 지배구조 개편 시급하지만 관치 우려도=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8월 말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총장 직선제 폐지를 첫번째 과제로 올렸다. 국립대가 막대한 국고지원을 받으면서도 사립대에 비해 교육성과와 운영효율이 저조한 핵심원인으로 총장 직선제를 지목한 것이다. 사실 총장 선출에 대한 교수들의 지나친 관심과 정치화로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에 소홀하고, 총장은 선출 후 자신을 지지한 교원들의 이해에 발목이 잡혀 대학 선진화를 위한 과제를 강력하고 소신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보니 국립대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돼온 것이 사실이다. 사립대들이 계열별 부총장제, 학장책임경영제 등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립대도 총장을 포함한 대학 지배구조 개편이 시급하다. 하지만 총장 직선제 폐지 반대론자들은 직선제의 폐해와 부작용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를폐지할 경우 대학 자율성이 침해되고 관치(官治)가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형기 국공립대 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경북대 교수)은 "총장 직선제는 관료의 지배가 특히 강한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면서 "공모를 거쳐 임명된 총장에게 권한을 몰아준다고 해서 대학 경쟁력이 강화되고 학과 폐지 등 구조조정이 쉬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립대 총장이 정부에 성과목표를 제시하고 이행실적을 평가해 예산과 임기와 연계하는 성과목표제를 도입하려는 것이 대표적인 관치 사례라는 지적이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교수)은 "총장의 경영능력에 따라 임기를 늘려주고 예산을 좀 더 주겠다는 것인데, 교과부 장관과 대학 총장이 갑을(甲乙) 관계가 되는 것"이라면서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지식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장보현 교과부 국립대학제도과장은 "국립대는 정부 고등교육재정의 약 60%를 사용하는데 총장 임기 4년 동안 검증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전혀 없었다"면서 "성과목표제는 교수들끼리 뽑은 총장이 임기가 끝나면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직선거법 엄격 적용, 교수회 권한 강화 필요=지난 4일 8개 교대 및 한국교원대 총장은 교과부와 구조개혁방안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에 서명했다. 직선 총장 선출방식을 개선해 총장 공모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부산교대와 함께 구조개혁을 거부했던 광주교대는 7일 뒤늦게 동참하기로 했다. 구조개혁 중점추진 대학에 포함돼 행ㆍ재정적 불이익을 받는 부산교대도 교과부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투항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교수 수가 100명 안팎인 교대의 경우 굳이 총장 직선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몇 명 안되는 교수들끼리 편을 가르거나 나눠먹기 식으로 총장을 학과별로 맡는 것 보다는 역량 있는 내ㆍ외부 인사를 발굴하는 것이 대학 발전을 위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가 200~400명 수준인 산업대 등 중소 지역 국립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교수 수가 1,000명 안팎인 지역 거점 국립대는 총장 직선제가 상당 기간 존치될 가능성이 크다. 직선제 유지를 원하는 교수가 많고, 이들은 대부분 법인화에도 반대하고 있다. 총장 직선제 폐지 주장은 제도 도입 직후부터 불거졌을 정도로 오랜 논란거리였다. 해마다 총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올해도 부산대에서 후보자 3명이 모두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결국 총장 선출자에 대한 승인이 거부됐다. 폐지론자들은 부산대 사태를 들어 총장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지만 폐지 반대론자들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며 이를 일축한다. 그렇다면 총장 직선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거나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직선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폐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공직선거법을 엄격히 적용해 불법ㆍ과열선거를 차단하는 것이다. 국립대 총장 선거는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돼 있는데 그동안 선관위가 느슨하게 선거법을 적용해온 측면이 있다. 불법 선거운동을 한 교수에 대해서는 후보 사퇴가 아니라 교수직 해임 등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직선제를 폐지하고 공모제를 도입할 경우 총장으로의 과도한 권한 집중을 막기 위해 교수회나 평의원회의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형기 상임회장은 "외국의 경우 직선제를 하지 않더라도 대학 노조 및 평의원회와 의결권을 공유하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다"면서 "직선제를 없애려면 학칙기구인 교수회를 법적인 의결기구로 만들어 견제 기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총장 선출방식을 놓고 갑론을박하기 보다는 대학 지배구조(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현숙 한국교육개발원 고등교육연구실장은 "오늘날 대학들이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총장에게 새로운 경영능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총장의 임무와 기능, 역할을 미리 정해놓고 선출방식을 논하는 것은 문제"이라면서 "국립대 총장 직선제 존폐는 법인화와 함께 점진적으로 풀어가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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