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23일] <1678> 해밀턴 관세보고서


1790년 4월23일, 해밀턴 미국 재무장관이 의회에 관세보고서를 올렸다. 요지는 관세인상. 10개월 전에 채택된 최초의 관세율이 5~10%인 상황에서 최저 관세율을 5%에서 7%로 상향 조정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관세인상론의 명분은 채무상환. 독립전쟁 채무 7,500만달러를 상환하려면 최소한 연간 300만달러가 필요해 관세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계산을 내밀었다. 보고서의 진짜 노림수는 연방 권한강화와 제조업 보호. 관세가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연방정부의 재정을 확충하고 수입제품에 고율관세를 매겨 걸음마 단계인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뜻이 깔려 있었다. 해밀턴의 의중을 간파한 주권파(州權派)의 견제로 보고서 입법화는 진통을 겪었다. 담배 수출이 많았던 주권파는 수입관세가 높아질 경우 보복관세로 되돌아올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상원은 15대13, 하원은 39대29로 해밀턴을 지지하는 연방파가 우세했던 상황. 결국 4개월 뒤 새로운 관세법이 제정됐다. 해밀턴은 2년 뒤에도 비슷한 논리로 관세를 올렸다. 미국의 고율관세는 성공했을까. 그랬다. 무엇보다 운이 좋았다.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에 휩쓸리며 중립국 미국의 무역과 해운업이 급신장하고 관세수입도 늘어났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 시절인 1835년 관세를 내리고도 연방 채무를 완전히 상환해 국채제로 시대를 맞은 것도 해밀턴 관세 덕분이다. 대가도 컸다. 주권파의 불만은 쌓이고 쌓여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남부의 패전으로 관세 반대세력의 입지가 약해진 뒤 거침없이 관세를 올린 미국은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최고율의 관세국이라는 악명을 떨쳤다.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요즘도 심심치 않게 무역분쟁을 일으키는 것 역시 자국산업 보호라는 오랜 경험의 관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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