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허브’ 싱가포르 흔들린다

역내 `금융 허브(Hub)`를 노리는 아시아 각국의 쟁탈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명실상부한 아시아 금융중심지로 군림해온 싱가포르는 이미 턱밑까지 다가온 주변국들의 거센 위협 앞에 초긴장 상태다. 상하이의 비상, 홍콩의 재도약, 말레이시아의 위협 등이 싱가포르를 동시에 압박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도 뒤늦게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을 국정 모토로 야심찬 도전장을 냈다. 한국이 참고해야 할 허브 모델 중 하나인 싱가포르 경제의 현주소와 문제점,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점검해본다. ◇`내우외환`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지금 `화려한 변신`을 시도중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4일 앞으로 15년간 `아시아 최고`에서 `세계 최고`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장기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은 역설적으로 갈수록 매력을 잃어가는 `허브 싱가포르`의 위기를 말해주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싱가포르를 위협하는 일차적인 요인은 미국과 이라크간 전쟁발발 가능성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변국 경기침체 등 대외적 변수다. 중계무역과 수출을 주축으로 하는 싱가포르로서는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국 상하이의 부상이다.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등에 업은 상하이는 다국적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새로운 아시아금융시장의 기수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 역시 중국 반환 이후에도 여전히 중국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면서 역내 돈줄을 주무르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국제 역외금융시장이자 `세금 천국`으로 불리는 라부얀 섬을 앞세워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고 저비용과 세제혜택을 내걸고 물류부문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싱가포르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아시아 금융시장은 당분간 싱가포르-홍콩-상하이-말레이시아 등 각국이 `군웅할거`하는 다극화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투명한 금융시스템 정비 시급= 동북아지역 금융허브를 꿈꾸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그래도 여전히 싱가포르가 교과서다. 물류ㆍ정보화 인프라 등 `하드웨어`도 완벽하지만 자유방임형 금융정책과 일관성 있는 감독제도 등 안정된 금융환경은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허브 싱가포르`의 매력이다. 금융허브를 일궈내려면 무엇보다도 국내 금융시스템의 투명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게 현지 은행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김준홍 외환은행 싱가포르 지점 차장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금융당국이 곧바로 대규모 검사인력을 투입해 `이 잡듯이` 감사를 한다”며 “한번 잘못을 하면 벌칙이 무서울 정도로 심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현지은행 관계자들은 아울러 우리 정부가 허브 조성의 일환으로 구상중인 ▲규제완화 ▲세제감면 등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인프라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성중 외환은행 싱가포르 지점장은 “싱가포르가 허브로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피부색은 다르지만 사고는 서구식으로 유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적절한 보상과 함께 한달전에만 통지하면 해고가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고용 탄력성, 전국민에 통용되는 싱가포르식 영어(싱글리쉬)도 우리나라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싱가포르=이진우기자 ra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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