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11일] 리카도


[오늘의 경제소사/9월11일] 리카도 권홍우 편집위원 역대 경제학자들이 수익률 게임을 한다고 치자. 누가 이길까. 가능성 1위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고전경제학의 완성자이자 주식투자의 고수다. 리카도의 부친도 유명한 금융업자였다. 유대인 추방으로 스페인을 떠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거쳐 런던에 정착한 리카도 가문은 막 피어나던 증권업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1772년 런던에서 17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리카도는 21살 때 ‘유대인’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렸다. 퀘이커교도 처녀와 사랑에 빠져 기독교로 개종한 것. 집안의 버림을 받아 무일푼으로 전락한 그는 얼마 안지나 주식투자에 성공, 청년부호의 대열에 올랐다. 저택을 사들여 연구실을 꾸미고 광석 수집에 시간과 돈을 바치던 27살 무렵 ‘국부론’을 읽은 후에는 경제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10년간 경제서적에 파묻혀 지내던 그는 1809년 주목받는 논객으로 떠오른다. 신문에 3회 기고한 ‘금ㆍ은의 높은 가격’이 통화논쟁을 낳았기 때문이다. 논쟁은 1821년 영국의 금본위제도 채택으로 이어졌다. 대표작은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1817년). 친구인 제임스 밀의 권유로 출간한 이 책에는 국제무역이론의 기초인 비교우위론 등이 담겨져 있다. ‘지주계급의 이익은 사회 전체의 이익과 항상 대립된다’며 지주를 배격하고 신흥자본가들의 편에 선 것도 이 책자를 통해서다. 학자로 이름을 날릴 때도 리카도의 재산은 계속 불어났다. 마흔 무렵에는 영국 100대 부호로 꼽힐 만큼 돈을 모았다. 1823년 9월11일, 51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5년 전에는 의원직을 사들여 하원에도 진출했다. 리카도의 명성은 사후에 더욱 높아졌다. 애덤 스미스 이후 케인즈 등장까지 150여년간 주류경제학을 지배한 사람이 바로 리카도다. 입력시간 : 2006/09/10 17:16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