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22일] 비틀

포드도 시트로엥도 인수를 거부했다. 패전 독일은 공장을 팔아 배상금에 보태려 했지만 아무도 폭격으로 허물어진 국민차 공장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60년, 이 공장은 누계생산 1억대를 돌파했다. 세계 4위의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이 지나온 길이다. 신화를 이끈 차는 ‘딱정벌레(비틀)’라는 애칭을 얻은 폴크스바겐. ‘라인강의 기적’의 아이콘이다. 비틀의 출발점은 1934년 6월22일. 독일 자동차연맹이 포르셰 박사에게 ‘국민차’ 개발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히틀러의 지원 아래 1938년 선보인 양산형 시제차량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작지만 실용적인데다 가격이 990마르크로 오토바이와 비슷했기 때문. 5인 가구의 연간 소득이 6,030마르크였던 시절이다. ‘일주일에 5마르크만 절약하면 내 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선전에 33만6,000여명이 예매했지만 막상 출고된 차량은 630대. 전쟁 탓이다. 히틀러를 신봉했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보내준 설비는 항공기 수리와 V1 로켓 제조에 쓰였다. 국민차의 차대를 이용한 3종의 전투용 차량 7만여대도 생산해낸 폴크스부르크의 공장은 연합국의 집중폭격을 받아 종전시 3분의2가 무너진 상태였다. 원매자가 없을 수밖에. 공장과 차의 이름을 폴크스바겐으로 바꾼 독일인들은 천장이 없어 비가 오면 작업이 중단되는 악조건에서도 공장을 살려냈다. 싸고 튼튼한 차라는 소문이 국경과 바다를 넘어서면서 서독도 부흥 가도를 내달렸다. 68년간 누적생산 2,152만9,464대라는 기록을 남긴 비틀은 2003년 단종됐으나 디자인은 뉴비틀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동일 디자인으로 100년을 넘기는 차도 가능해 보인다. 시대를 초월하는 차, 이름만 들어도 한국을 떠올릴 명차,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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