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박세리와 한국경제

金熹中사회부차장박세리가 우리를 또 한번 실망시켰다. 11개월만에 또다시 예선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올해 처음 열린 헬스사우스 이노규럴 대회에서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온 국민이 힘겨워하던 지난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던 박세리다. 양말을 벗고 물가에 빠진 볼을 쳐내는 그 모습에 우리는 한없이 감동했고 박수를 보냈다. 그녀의 강한 모습에 우리 모두는 이 어려움을 분연히 박차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내자고 다짐했다. 박세리, 그녀는 정말 우리들의 희망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꾸 추락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노규럴 대회에 나타난 그녀의 눈매는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몸매도 예전처럼 다부진 모습이 아니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아이언 샷도 많이 무뎌진 듯한 느낌이다. 일시적인 슬럼프인가, 아니면 천재성의 상실인가. 프로무대에 서기 위해 땀을 쏟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안주하고 싶은걸까. 풀죽은 박세리를 보면서 한국경제의 모습이 자꾸 중첩돼 떠오른다. 한국경제는 2년전만 하더라도 선진국의 환상에 빠져 흥청댔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도달했다며 우쭐댔다.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경고에 대해서도 『쓸데없는 소리!』라며 무시했다. 결국 우리는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외국의 비아냥대로 스스로 좌초했다. 기초실력, 다시 말해 경제의 기초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점에 달한 뒤 추락하는 느낌과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정부·기업·가계 등 이른바 경제주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물론 그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다. 형편도 차츰 나아지고 있다. 달러가 너무 많이 들어와 걱정일 정도다. 주식시장은 연일 거래폭증 속에 상승무드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도 들먹거리고 있다. 1년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두려움과 막막함은 찾아볼 수도 없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IMF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IMF의 관리를 받고 있다. 결코 들뜨거나 흥분할 때가 아니다. 피치ICBA의 「투자적격」 판정이 IMF졸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코 자만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IMF 관리체제를 맞았을 때 절실히 깨달았던 그 마음, 그 각오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절실히 느꼈던 부문을 보강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약한 경제의 기초체력을 더욱 더 다져야 하는 것이다. 박세리와 한국경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결코 자만하거나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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