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ㆍ가스전 개발을 선도할 ‘국가대표기업(National Flagship Company)’은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가에너지자문회의에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자원개발사업을 주도하는 한편 해외 메이저와 경쟁할 수 있는 자원개발전문회사를 세워 ‘아시아 메이저’로 육성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같은 계획은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에너지자문회의에서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아시아 메이저급 기업이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2012년까지 100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산업자원부가 2차 에너지자문회의에서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같은 기간 국가 전체적으로 유전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을 모두 털어도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한국의 해외자원개발에 기함(旗艦) 역할을 할 기업은 떠보지도 못하고 예산문제로 좌초할 신세인 셈이다. 유전개발펀드를 만들어 재원확충에 나서겠다고 정부는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문기업으로의 1단계 목표시기를 다음 정권 말인 2013년으로 정해놓은 것을 보면 정부의 속셈이 어떠한지 읽을 수 있다. 하루 생산량 30만배럴, 전세계 확보매장량 30억배럴의 메이저 석유개발회사. 정부가 2013년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자원개발전문기업의 모습이다. 전문기업은 글로벌 네트웍을 확보하고 유전개발사업의 3대 부문인 탐사ㆍ개발ㆍ생산에서 최고의 기술력 및 인력을 보유해 최소한 중국, 일본의 메이저 석유회사와 동등한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 노 대통령은 1차 에너지자문회의에서 “시장에서 경제성, 경쟁력을 갖도록 냉정한 검토를 거쳐 추진하라”며 대강의 밑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전문기업의 모태는 석유공사로 정부는 일단 석유공사의 혁신을 추진하며 개발부분을 확대한 뒤 비축사업부문에서 떼내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석유공사의 자원개발 자회사는 2013년쯤 민영화해 자본을 유치, 대형화를 촉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석유사업의 업스트림(개발ㆍ생산)과 다운스트림(정제)을 모두 갖추도록 해 명실상부한 석유 대표기업이자 아시아메이저로 육성할 예정이다. 청사진은 이처럼 화려하지만 ‘그림의 떡’임을 정부도 자인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하루 30만배럴을 공급하기 위해 ▦생산기간 ▦개발비용 ▦확보매장량 등을 검토한 결과 약 10조원의 투자재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산자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현재의 세입ㆍ세출 구조상 자원개발 부문에 정부재원을 대폭 확충하는 것은 어려울 것” 이라며 “2009년까지 유ㆍ가스전개발의 총투입 예산이 2조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중ㆍ장기 계획 특성상 정권이 바뀌면 그 운명을 짐작키 어렵다. “임기 내 자원개발 전문기업의 성장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애매한 참여정부의 수사가 이를 웅변한다. 정부 관계자 마저 “세부방안은 검토 중이지만 석유공사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어떻게 갈지 모른다”고 토로할 정도다. 혁신의 주체인 석유공사는 정부의 ‘민영화’ 발언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이 같은 구상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박희천 인하대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안보 및 경제발전을 위해 정부는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자원개발전문기업 육성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