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살인은 그 시대의 가치관·문화 반영

■ 살인의 역사 (피테르 스피렌부르그 지음, 개마고원 펴냄)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시리아의 남부 도시 다라에서 시위 도중 사라졌던 13살 소년은 실종한 달 뒤인 지난 5월 말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온 몸에 총알이 박히고, 막대기 등으로 심하게 구타당한 흔적이 뚜렷했으며, 성기도 잘려나간 채였다. 이처럼 끔찍한 살인은 오늘 날 지구촌에서 하루에도 수 십 건씩 발생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살인은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 계급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며 중세부터 현대까지 7세기에 걸쳐 살인의 변천사를 각종 문헌을 통해 추적해 간다. 우선 저자는 범죄가 판을 치는 현대 사회가 중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1300년대 인구 10만 명 당 35명에 달했던 살인 피해자 수가 현대에 와서는 10만 명 당 1~2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가 중세 시대보다 훨씬 살기 좋아진 것일까. 저자는 명예에 대한 관념이 살인의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판단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명예는 육체적 용기와 용맹, 폭력적인 성향에 달려 있다. 남성은 자신이나 가족의 명예가 손상됐을 때 폭력으로 되갚아야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표적이다. 14세기 초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작품에서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를 결투 끝에 살해하는데, 이는 티볼트의 칼에 죽은 친구 머큐쇼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 살인이 심각한 범죄로 간주돼 처벌받는 것은 국가의 중앙집권화가 완성되고 사법 제도가 정비되면서부터다. 살인이 불법 행위로 규정되면서 명예의 개념도 변한다. 신체와 결부돼 있던 명예는 점차 내면의 미덕으로 개념이 바뀌며 싸움을 거절하는 것도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사리분별이 있는 행동으로 간주됐다. 명예에 대한 관념이 변화하면서 중세 이후 감소해 온 살인 빈도 수는 20세기 들어 도시를 중심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저자는 "세계화의 지역주의 대두로 인해 민족국가의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해지면서 폭력 행위가 파고들 틈새가 생겨났고 특히 국가의 행정력이 덜 미치는 도시의 슬럼 지역에서 육체적 힘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명예 관념이 부활하면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이나 영아 살인 사건,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등의 형태로 20세기 살인은 좀 더 과감해지고 잔인해지는 양상이다. 역사적 흐름과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살인의 종류와 성격, 살인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저자의 고찰은 유럽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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