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달러화도 급속히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으로 인한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달러화 약세는 근본적으로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빚어진 미국의 과잉 유동성에 따른 것이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 감춰졌던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14일(현지시간) 미국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1유로당 1.4544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올 2월 달러화가 유로당 1.25달러대에 거래됐음을 감안하면 거의 14%가 평가절하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달러 약세는 글로벌 경제가 최악의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자 '달러화 바로 보기'가 활발히 진행되기 때문으로 본다.
지난해 10~11월과 올 2~3월 금융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달러화는 위험 회피수단으로서의 수요가 폭증, 유로당 1.25달러선까지 급락(가치상승)했다. 이는 위기 국면에서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달러화가 낫다'는 공감대가 시장에 광범위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여름 이후 투자자들의 다급한 수요가 진정되면서 달러화는 그간 미국 정부에 의해 이뤄졌던 공급 과잉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빠르게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그간 주택 거품 붕괴로 초래된 금융위기를 넘기 위해 0%대의 초저금리 통화정책과 국채 발행 등으로 무차별적인 달러 살포를 특징으로 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과도하게 풀린 달러화가 일시에 모두 회수되지 않는 한 달러화의 장기적인 약세추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증시가 이미 상승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화의 투자 메리트가 크게 반감됐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대규모 경기부양에 발목을 잡힌 미국 정부가 앞으로도 수년간 엄청난 재정적자에 직면할 것으로 보여 달러의 하락세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지적됐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미국 정부가 올해(1조6,000억달러)와 내년(1조5,000억달러)에만 3조달러가 넘는 재정적자를 기록, 부시 행정부 시절 8년간의 총재정적자 규모 2조달러를 휠씬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비록 재정 적자 규모는 올해를 피크로 내년부터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오는 2019년까지 해마다 7,000억~9,000억달러씩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OMB의 진단이다.
재정 적자발(發) 달러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와 시중 금리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를 '더블딥'의 나락으로 몰아갈 수 도 있다.
지난 1년간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미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거나 지출을 줄이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고 반면 재정 적자를 존속시키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커지고 대출 금리가 올라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게 된다"면서 "시장에서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믿는 순간 달러 가치는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