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11일 오전 8시8분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 거대한 아리안 로켓이 하늘로 치솟았다. 발사 23분36초 후 화물칸 구석에 실렸던 소형 위성이 우주로 떨어져 나갔다. 위성의 이름은 우리별 1호. 무게 48.6㎏짜리 실험위성이었지만 한국의 우주개발사를 연 주인공이다. 우리별 1호의 발사를 누구보다 반긴 것은 20대 청년과학자 그룹. 인공위성에 관한 기술이 전혀 없어 영국 서리대에 파견돼 낮에는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밤에는 위성 제작에 참여하는 강행군 끝에 나온 결과물이어서 감격이 남달랐다. 쓰레기통의 메모지까지 들여다보며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을 얻으려던 노력이 1년3개월 만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다. 우리별 1호에 들어간 1만여개 부품 대부분이 외국제여서 ‘이름만 우리별이지 속은 남의 별’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한국은 기술을 축적해나갔다. 덕분에 1999년 5월 발사된 우리별 3호부터는 설계와 핵심 자재를 국산으로 바꿀 수 있었다. 우리별 1호가 발사된 지 만 14년. 한국이 발사한 인공위성은 9개에 이른다. 기술도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달 말 발사된 다목적 실용 인공위성 아리랑 2호는 연간 1,000만달러의 수익이 기대될 만큼 선명한 사진 해상도를 자랑하는 고성능 위성이다. 내년이면 국내 기지(고흥우주센터)에서 국산 발사체(로켓)를 이용해 순수 국산위성을 쏘아올리자는 오랜 염원도 풀린다. 짧은 기간에 우주산업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 집념과 열정 덕분이다. 남은 문제는 돈. 톤당 1,000만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우주산업에 들어갈 예산이 2010년까지 2조4,649억으로 잡혀 있지만 미국의 300분의1, 중국과 일본의 20분1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