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알찬 방과후학교… "학원갈 일 없어요"

'사교육 없는 학교' 서울 영동일고 가보니…<br>수십여개 강좌중 자유롭게 선택해 수강…다양한 수준별 수업등 정규수업도 내실화<br>교사들 자질 향상위한 투자확대도 추진

영동일고는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영어체험교실 4개를 별도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영동일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영동일고. 정규수업이 끝난 오후 5시께인데도 어쩐 일인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학교 풍경이라면 학생들이 학원강습과 과외를 받기 위해 서둘러 교문 밖을 나서지만 이 학교에서는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있다. 보충학습과 방과후 강좌를 듣기 위해서다. 영동일고는 이번 2학기에 37개의 방과후학교 강좌를 개설했다. 1~2학년 532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1학기와 여름방학에 비해 개설 강좌 수는 줄었지만 지난해 2학기에 비하면 강좌수는 6배, 수강인원은 5배 가까이 늘었다. 정규수업이 끝나도 각 반마다 10여명의 학생들이 남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심화학습을 받는다. 260석 규모의 학습실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학생들로 꽉 들어찬다. 담당교사도 늦게까지 남아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돕는다. 자율학습은 밤 10시까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희망자에 한해 11시30분까지도 학습실을 이용할 수 있다. ◇학원 강의 못지 않은 방과후학교 운영=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사교육 없는 학교' 시범학교로 지정된 영동일고가 공교육 내실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영동일고가 진행하고 있는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의 핵심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방과후학교다. 심화반(종합반)과 희망반(단과반)으로 나눠 교사들이 세분화된 강좌를 개설하면 학생들이 학원수강 하듯 강좌를 자유롭게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지난 여름방학 때는 무려 67개의 강좌가 개설됐고, 각 강좌당 10~30명씩 약 1,300여명이 수강했다. 수강료는 학생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5명이 30회짜리 수업을 들을 경우 8만8,000원으로, 학원수강료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방과후학교에는 영동일고 교사뿐 아니라 외부강사도 초빙해 강의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도 유명 입시학원 강사에게 논술과 토익수업을 맡겼으며 이들을 초빙하기 위해 주말ㆍ휴일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권용란 교장은 "방과후학교 강좌는 철저히 학생의 선택에 따라 개설 여부가 결정된다"며 "교사들도 학생들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업의 질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과후학교는 어디까지나 정규수업을 보완하는 수단일 뿐이다. 영동일고는 사교육 경감을 위한 핵심이 정규수업 내실화에 있다고 보고, 교육과정 편성을 개선하고 수준별 수업을 다양화하고 있다. 학습부진학생에 대해서는 멘토링 제도도 시행 중이다. 수준별 영어수업을 할 수 있는 '영어전용교실' 4곳도 마련, 곧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KT의 자회사인 KT정보에듀와 제휴를 맺어 실시간 양방향 서비스도 곧 실시한다. KT정보에듀의 영역별 강사들이 영동일고에서 직접 강의를 하고 강의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된다. 강인중 교감은 "학생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강의를 추가로 들을 수 있어 사교육비를 줄이는 한편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 학원수강비율 40% 수준으로 낮춘다=영동일고의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는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완공된 영동일고의 교사는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최신식 시설로 지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학생들의 면접ㆍ구술고사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특별실 내에 설치된 최첨단 동작인식기. 2,000여만원을 들여 설치한 이 기기는 센서가 자동으로 학생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촬영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일일이 촬영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앴다. 학생들은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면접자세나 표정 등에서 부족한 부분을 고칠 수 있다. 북라운지(book lounge)과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실'도 여느 고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설이다. 학교를 찾는 학부모와 동문들을 위해 마련한 북라운지에서는 학부모들간 정보 교류와 학교 발전을 위한 제안이 이뤄진다.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실에는 교사와 행정 직원 등 7명으로 구성된 전담 추진 기획팀이 상주하면서 학부모와의 상담이 이뤄진다. 영동일고를 운영하는 효송학원 하욱 이사장은 "사교육 없는 학교를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도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이라고 자부하지만 교실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학교 교육 내실화를 위해서는 교사의 자질 향상과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보고, 교사 복지 및 후생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릴 생각이다. 하 이사장은 "성과급제와 연계해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할 방침이다. 교사들이 과거와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과 전문성을 키우도록 유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영동일고가 올 초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되기 전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학생 1인당 월 사교육비가 80만원에 달할 정도로 사교육 의존도가 높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방과후학교 참여율이 27%에 머물렀고, 학원수강학생 비율은 60%가 넘었다. 영동일고는 정규 교육과정 내실화와 다양한 방과후학교 운영, 자기주도적 학습 활성화를 통해 올해 말까지 현재 70%대인 학생ㆍ학부모의 학교교육 만족도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학원수강학생 비율은 40%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권 교장은 "10년 넘게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성적 향상과 잠재력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교육이 내실화 되고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사교육은 줄어들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