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1일] 루르 점령


1923년 1월11일, 프랑스와 벨기에 연합군 6만여명이 독일 국경을 넘었다. 목적지는 루르(Ruhr). 1차 대전 패전국으로 무장해제 당한 독일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루르를 내줬다. 가뜩이나 어려웠던 독일 경제는 루르 강점 이후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루르 지역은 독일 전체 철강과 석탄의 80%를 생산하고 화물 운송량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공업단지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강점 이유는 배상 지연.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제때 갚지 못하자 영국과 미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군대를 보냈다. 독일인들은 점령군에 대해 파업으로 맞섰다. 2년3개월의 프랑스군 강점기간 중 루르의 생산은 점령 이전의 30% 수준을 밑돌았다. 유혈참사도 적지않게 일어나 노동자 400여명이 죽고 2,000명 이상이 부상 당했으며 15만명이 추방령을 받고 쫓겨났다. 독일 정부는 비폭력 투쟁을 벌이는 루르 지역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해 마르크화를 마구 찍어냈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고에 시달리던 독일 경제는 지폐발행 확대로 초인플레이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빵 한 조각에 800억마르크, 구두 한 켤레에 4조2,000억마르크라는 사상 초유의 물가고는 화폐개혁으로 잡혔지만 독일인들의 마음에 프랑스에 대한 증오심을 심었다. 루르 점령이 없었다면 히틀러가 세력을 떨치지도, 2차 대전도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에도 루르 지역을 차지하려다 독일과 갈등을 빚었다. 알자스 로렌의 철강과 루르의 석탄을 한데 묶고 싶어서다. 프랑스와 독일 간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해묵은 원한은 1952년 극적으로 씻겨졌다.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CSC) 출범으로 평화와 공존이 찾아온 것이다. 악수와 미소의 힘은 철혈(鐵血)보다 훨씬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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