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르포] 이탈리아·네덜란드 노사정위원회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에서처럼 노사정 협의 기구의 존재에 대해 오랜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노사정 협의체가 노사 갈등 완화와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나라 노사정 협의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경제 침체의 수렁에서 건져낸 일등공신이었다. 노사정 합의 이후 이탈리아의 파업 손실일수는 한해 2억 시간(파업시간에 파업참가 근로자를 곱한 단위)에서 100만~200만 시간으로 줄었고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10%대에서 4%대로 낮아졌다.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노사정 협의체는 노사간 자율적 토대 위에 대화와 협력을 통한 노사간 쟁점 해결과 노사정 참여민주주의를 실천, 노사안정과 경제발전 달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사회경제협의회(SER)와 노동재단(LABOR FOUNDATION)을 축으로 해 노사간 협의의 장을 마련한다고 해서 협의 모형(CONSULTATION MODEL)이라고 불리고 있다. 두 개 기관은 각기 다른 역할과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으나 경제 현안 등 중요 쟁점을 노사 당사자간 협의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98년 1월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 모델을 수용, 노사정 위원회를 설립·운영하고 있으나 노사간 대립이 심하고 협의 전통이 부족해 진통을 겪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 98년 1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간 합의에 성공하며 화려한 출발을 했으나 이후 지지부진한 활동으로 노사 양측으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도 지난해 5월 위원회를 법적 기구로 인정했으나, 활동이 지지부진하자 위원회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해체론자들은 노사간 이견을 조율하는 협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이를 상설기구로 만들어 국가 예산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예를 볼때 노사정위는 경제 회복에 확고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제불안이 노사정협의체를 탄생시켰다=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노사정협의체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설립됐다. 네덜란드는 60년대에 정부의 임금 통제에 대한 불만이 임금인상 투쟁으로 확산되며 대규모 분규를 겪었다. 이같은 투쟁은 70년대에도 이어지며 유럽에서 가장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했다. 70년 8월 로테르담 부두노동자의 파업과 72년 금속노련의 파업은 네덜란드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생산성 증가를 웃도는 임금 인상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높은 실업률로 인한 사회불안이 야기됐다. 60~70년대 네덜란드 경제는 높은 물가 상승과 낮은 고용증가로 전형적인 스테그플레이션을 나타냈으며 이같은 경기침체는 80년대 초반에 극치에 달했다. 80~83년도 네덜란드 거시지표는 국내총생산(GDP) 0.3% 감소 고용 1.3% 감소 실질임금 1.5% 감소 실업률 10.1% 등 암울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탈리아는 90년초만해도 노동계의 높은 임금 인상 요구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고물가는 고임금을 유발했으며 이는 다시 고물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노동계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파업으로 매년 2억 시간 가량의 노동시간 손실을 초래했으며 이는 국내기업과 외국기업들의 이탈리아 투자를 막아 대규모 실업을 야기했다. ◇노사정 합의로 위기를 극복했다=네덜란드는 정부와 재계·노동계가 경제 위기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고 82년 바세나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민간부분의 임금 억제와 공무원의 임금과 사회연금 동결 등의 내용을 담아 도입에 상당한 진통을 겪기도 했으나 노사정의 적극적 설득에 힘입어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협약으로 네덜란드의 임금 수준을 경쟁국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돼 협의의 초첨을 노동력 재배치와 높은 실업률에 대처하는 정책에 맞출 수 있게 됐다. 협약은 네덜란드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84~97년 13년 동안 생산단위당 노동비용은 프랑스에선 30%, 독일은 40% 이상 상승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1% 하락했다. 이는 실업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91~96년 네덜란드 평균 실업률은 6.2%였으나 97~98년 4.6%로 낮아져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의 두자릿수 실업률의 절반 수준을 밑돌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 모형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바세나르 협약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커져 많은 노동자들이 단시간 근로자로 전락했고 경제활동참가율(63.8%)이 OECD 평균(66.4%)에 크게 못미쳐 실업률 하락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노사 불안을 극복하고 활력있는 경제를 재건한데 사회적 협의 전통이 밑바탕이 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도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고임금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난 93년 임금을 인플레이션 수준보다 낮게 한다는 명분으로 노사정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물가상승률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지난 80년대 후반기만해도 6%대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은 98년 2%대로 낮아졌다. 임금도 명목임금 상승률은 낮았으나 물가를 감안한 실질임금은 과거보다 높아져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갔다. ◇우리도 노사정 협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네덜란드가 경제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갖게 된 데는 60~70년대 극심했던 노사갈등과 반세기 가까운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협의회 협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노사간 협의 전통이 없는데다 노사정 위원회 출범도 이제 두 돌을 갓 지나 네덜란드 수준의 노사 협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사정위 출범 자체가 사회적 협의를 향한 큰 걸음인 만큼 우리도 갈등과 협력을 통해 노사안정이라는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노사정위가 제 기능을 찾기 위해서는 위원회 활동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노사정위 선한승(宣翰承) 박사는 『최근 노동계 불참으로 활동이 소강상태에 빠졌다고 해서 위원회 기능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나 선진국들은 200년 이상의 노동운동의 역사속에서 노사관계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면서 『우리도 네덜란드 등 선진국의 노사정위 운영 경험을 통해 새로운 노사관계 지평을 열어가야 할 시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에피지오 에스파 총리 경제특보는 『노사정위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상호간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노사정간에 이견이 달라 합의가 쉽지 않으나 끊임없는 대화로 이견을 좁히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마·헤이그=정재홍기자JJH@SED.CO.KR 입력시간 2000/04/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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