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으로 국제 외환시장의 판도가 뒤바뀌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통화가 '피난처'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달러화와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안전 투자처'를 찾는 투자자들이 지금까지 대표적인 리스크 자산으로만 인식돼온 아시아 통화로까지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화나 위안화ㆍ스위스프랑화 등 전통적인 자금 피난처는 물론이고 태국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 통화 등으로 글로벌 자금이 몰리고 있다"며 "이들 아시아 신흥국이 달러 약세에 대비한 임시 투자처 역할을 하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들 아시아 신흥국가의 달러 대비 환율은 지난 7월 초와 비교해 최고 2% 이상 오르는 등 상대적인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처럼 최근 아시아 신흥국에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들 국가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오히려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정적자로 신음하는 서구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시아 주요 국가의 재정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경기침체의 징조가 보이면 글로벌 투자자금이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먼저 발을 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더구나 아시아 신흥국가는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진 미국ㆍ유럽 등과 비교해 앞으로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고 금리인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으로 꼽힌다고 WSJ는 전했다. 실제로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1~7월 외국인 투자가들은 아시아 주요국의 자국 통화 표시 채권을 530억달러나 매입해 지난해 660억달러에 이미 근접했다. 중국 정부가 사상 유례 없는 위안화 강세를 용인하고 있는 것도 아시아권 통화의 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날 중국 외환교역센터는 위안화 기준 환율을 달러당 6.3950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는 전 거래일 6.3972위안보다 0.0022위안 하락(위안화 가치 상승)한 수치다. WSJ는 "국제 환시장에서 위안화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중국 금융 당국은 외국인 투자에 상한액을 둬서 제한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아시아 통화를 중국 위안화의 대체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안화 강세가 지속되는 한 아시아 통화로 돈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다만 아시아 통화의 인기가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화나 스위스프랑에 대한 선호가 여전히 강할 뿐 아니라 쏟아지는 글로벌 자금을 소화하기에는 아시아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의 자국 통화 표시 채권시장은 5조달러 규모로 미국 채권시장(31조달러)의 5분의1에도 못 미친다. 소시에테제네랄 아시아의 로버트 레일리 채권 공동 운영담당자는 "단기적으로 달러 약세에 대한 위험회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나 이후에는 자금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