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품팔이를 하고 시장 바닥을 돌며 모으고, 먹지 않고 쓰지 않으며 평생을 모은 전 재산을 학교에 쾌척한 할머니의 얘기는 이 시대에 신선한 충격이다. 이같이 아름다운 얘기는 가뭄에 콩나듯해서 신선감을 더해주는 지도 모른다.지금 우리는 정경 유착과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 재벌이 되고도 2세 3세로 부를 전수하는 부도덕한 졸부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같은 풍토속에서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재벌로 재기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
그 악습의 고리가 끊기는 계기가 한보비리 재수사에서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한보비리와 김현철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은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일가의 전재산을 압류하고 정보근 회장도 구속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구악을 근절하겠다」는 다짐이다.
뒤늦은 결정이지만 당연한 조치이자 다짐이다. 국민적인 불신에 밀려 재수사를 하게 됐지만 자성을 바탕으로 의혹을 해소하고 건전한 기업풍토와 기업가 정신을 조성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검찰의 1차수사는 성역에 갇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의혹의 초점인 부정대출의 외압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깃털로 몸체를 만들려 함으로써 의혹이 부풀었던 것이다. 더욱이 수사과정에서 정총회장의 아들과 한보를 살려 재기 발판을 만들어 주기 위한 「묵계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어 한보살리기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1차 수사에서 정회장은 늦게야 검찰에 소환됐고 구속되지도 않았다. 그 흔한 세무조사나 당연히 취했어야 할 재산보전 조치도 하지 않았다. 비자금 운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친인척 여직원은 조사할 계획조차 없었다. 계열사들은 건재하고 오히려 한보 추가지원이 심심찮게 거론되기까지 했다. 정씨의 입이 두려워서 인지는 몰라도 한보살리기 의혹이 괜한 것이 아님을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한보와 정총회장은 수서사건으로 이미 부도덕한 기업과 기업인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재벌로 커서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법적 도덕적 응징이 부실했던 데서 비롯됐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허술한 법치가 부패구조를 조장했고 그같은 환경이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흥청대는 풍토를 만들었던 것이다.
새 진용으로 앞만보고 가겠다는 검찰의 재수사에 기대하는 것은 의혹의 실체 해부이지만 더불어 부도덕하고 반사회적 기업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엄정한 법집행이다. 그것은 곧 건전한 기업풍토, 선진 경제에 걸맞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길이기도 하다. 개혁과 맞먹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