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IT 업계 을·병·정이 과연 무능할까

"을ㆍ병ㆍ 정까지 하청업체가 쭉 있습니다. 사업을 수주할 때는 인맥과 학맥을 동원한 로비가 치열하구요." 한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 관계자의 이야기다. 얼마 전 현대캐피탈ㆍ농협 등에서 보안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보안과 IT서비스 등을 포함한 업계 관행에 잠시 조명이 비춰졌지만 재빨리 잊혀지는 분위기다. IT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업계의 업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건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대기업 아래 5차 하청업체까지 늘어서 있다가 중간 업체가 사라져버려 4, 5차 업체들이 타격을 받는 사례가 있었다. 하청업체는 적은 보수에 단순 업무만 반복하면서 언제라도 외부 상황에 무너질 수 있는 기업으로 근근이 버텨나가기 마련이다. 기술력을 쌓거나 새로운 제품ㆍ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사업을 발주한 업체는 하청업체 개발자들이 '무능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왜 무능할 수밖에 없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 개발자들은 작업을 앞두고 전체적인 틀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찾는 구상의 과정을 거친다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무조건 프로그램 코딩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밥줄을 놓친다. 각종 IT 사업 수주경쟁에서는 기술보다는 금액이 중요한 지표다. 최근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잘 해줄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싸게 해줄 수 있느냐'를 여전히 많이 따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사업 신청 기업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공개돼 있어 인맥과 학맥으로 로비해 사업을 따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제조업 등 다른 업계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하지만 IT 업계의 상황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현대캐피탈이나 농협 사례에서 보듯 전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보안 문제로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이 얼마 전 직속의 보안 담당팀을 만들고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IT는 상품과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후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구조라면 언제까지고 개발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기업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IT 산업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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