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고아저작물


삼성과 애플 사이의 끝없는 소송이 잘 보여주듯이 최근 디지털 경제에서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전지구적 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소유가 아니라 접속을 본질로 하는 디지털 경제는 지식과 정보의 통합, 기술과 예술의 융합, 사적 소유와 공적 공유의 혼융(混融) 등 과거의 경제적 프로토콜을 무너뜨리는 수많은 혁신을 만들어낸다.

혁신에는 오랜 문화적 축적으로부터 지혜를 빌려온 부분과 개인 또는 집단의 창조성에 기인한 부분이 뒤섞여 있다. 네트워크를 통한 상호 연결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경제는 속성상 인류의 공통 유산인 지식과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를 무제한으로 촉진해야 하는 동시에 창조성에 대한 보상과 그 재생산을 보장하는 독점을 잠시 보호해야 하는 모순된 과제를 떠안는다. 그 모순은 미래에 대한 여러 가능태를 낳는데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 가능태들이 서로 경쟁해 가면서 소유에서 공유로 가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밀어 올리는 장엄한 광경을 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지적 재산의 사적 독점과 공적 공유 사이의 격한 길항 속에서 최근 주목 받는 것 중 하나가 '고아저작물'이다. '고아저작물'이란 저작권법 등으로 보호는 되지만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저작물을 말한다. 가령 영화 '써니'에서처럼 오래된 사진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 사진사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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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저작물은 보호 기간이 만료돼 이미 공적 영역으로 귀속된 저작물이나 연구ㆍ교육ㆍ비평ㆍ보도 등 특정한 목적에 한해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쓰는 공정이용 저작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마디로 저작권자의 법적 실종 때문에 이를 이용한 지적 창조 작업이 불가능한 저작물이다. 최근 저작권 보호기간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온라인을 통한 복제와 공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각국은 위법행위 없이는 블로그에 올리는 등의 간단한 디지털 작업에도 동원될 수 없는 고아저작물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지난 4일, 유럽연합(EU) 이사회가 고아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하거나 디지털화해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은 이 문제가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경제로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에서 더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신속한 조처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10일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2 서울 저작권 포럼'에서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홀로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키울 수 없게 된 시대에 모쪼록 현명한 결론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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