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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께서 열심히 일해 오신만큼 회사는 이익을 내서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최근 사정이 좋지 못해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열심히 일해 오신 여러분 잘못이 아니라 회사의 책임입니다."
23일 오전6시20분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정문 앞.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권오갑 사장이 예고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복 차림의 권 사장은 2시간 넘게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임직원에게 드리는 글'을 나눠줬다. 멀찌감치 떨어져 출근하는 직원에게는 환하게 웃으며 손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권 사장이 직접 나서 직원들에게 '러브레터'를 건넨 것은 그만큼 최근 회사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상반기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노조의 파업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노조는 이날 오후5시부터 4일간 파업 찬반투표를 벌인다. 만일 노조가 파업에 찬성하게 되면 지난 19년 동안 이어져 온 무분규 전통도 깨지게 된다.
권 사장이 이날 10여명의 임원들과 함께 출근길 직원들을 만난 것은 20년 만에 파업에 들어가려는 조합원들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보기 위해서다. 취임 일주일째인 권 사장은 최근 협상에서 조합원에 불리한 일부 조건을 철회하기로 하는 등 조합원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권 사장은 이날 직원들에게 나눠준 편지에서 "여러분은 우리 회사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우리 회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믿고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 무엇인지 회사와 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반드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미래의 밝은 모습에 대한 약속도 했다. 권 사장은 "동종업계 어느 회사보다도 여러분이 일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래서 여러분이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1위 조선소라는 명성도 버리겠다고도 했다. 권 사장 자신이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 조선기업으로 만든 주역이었지만 이를 포기하는 대신 일할 맛 나는 회사, 내 땀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힘줘 말했다.
현대중공업에서 37년을 일한 권 사장은 지난 2010년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이끌어오면서 적자 기업을 흑자로 전환시킨 바 있다. 현대오일뱅크를 정유사 중 유일한 흑자기업으로 만든 권 사장은 노사 관계에서도 진정성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권 사장의 솔직한 편지가 파업으로 향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