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국책 메가뱅크 무산 이후


국책 메가뱅크는 숱한 논란만 야기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국책 은행인 산은지주와 정부 소유 우리금융지주를 합치고 이를 계기로 시중은행의 합종연횡으로 국내 은행산업의 빅뱅을 삼는다는 논리였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먼저 군불을 뗐다. 금융당국이 동조하는 것처럼 비취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년간 자취를 감췄던 은행 빅뱅론에 불이 붙었다. 국책 메가뱅크론은 정서적 거부감부터 낳았다. 산업은행과 정부 소유의 시중은행이 왜 결합돼야 하는지가 첫 번째 논란이다. 산업은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민영화의 도마에 오른다. 같은 국책 은행인 기업은행과의 합병도 유효한 시나리오다. 민영화 대상일 수도 있는 국책 은행이 주인 찾기에 나선 시중 은행을 인수하겠다니, 고개가 갸우뚱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걸음마 수준의 국제 경쟁력 두 번째 논란은 빅딜의 진행과정에서 관치의 냄새가 풍겼다.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을 맡은 강 회장이 메가뱅크론을 꺼내 들자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화답하면서 밀실 협약이니 관치금융이니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메가뱅크는 꺼내본 적이 없으며 금융 정책과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지만 은행권은 "우리더러 들러리를 서라는 말이냐"며 불만을 토해냈다. 논란은 김 위원장이 지난 14일 우리금융 민명화에 산은의 참가를 배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제조업에서 삼성과 현대차와 같은 굴지의 기업이 있는 것처럼 은행도 국제무대에 설 만한 대형 은행이 있어야 한다는 메가뱅크론자의 주장은 틀린 것만은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세계 50위권 은행이 없어 해외 대형은행에 공사 이행 보증을 받아야만 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우리도 글로벌 은행을 하나쯤은 둬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제조업과 정보통신(IT)도 잘하고 산업의 혈맥인 은행도 잘나가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 그러나 덩치가 커졌다고 해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에 가깝다. 은행 두 개를 합쳐 세계 50위권 은행으로 만든다고 해서 규모의 경제를 뛰어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까라는 질문에는 국내 은행산업의 실상을 본다면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은행 수가 줄게 되면 점포와 인력이 줄어 규모의 경쟁력을 높일 수는 있다. 그러나 대출과 예금 금리 격차로 이익 대부분을 남기는 후진적 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여러 차례 은행 빅뱅을 거쳤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고수익을 좇아 선진국 은행이 만든 파생상품에 덜컥 투자했다가 거의 전액을 손실 봤던 게 시중은행의 민망한 국제화 수준이다. 뉴욕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 현지 법인은 연락사무소 수준을 넘지 못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들불처럼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죽어가는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하는 위험한 도박판을 벌인 적도 있다. 시중은행의 국제 경쟁력은 아직도 골목 은행 수준이다. 인재와 노하우ㆍ인맥이 중요한 게 금융산업이다. 합병이나 인수로 일취월장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채권투자에 밝은 리먼브러더스의 미국 외 법인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인수했지만 리먼의 인재는 떠나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를 인수한 1위 상업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아직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덩치 키우기보단 체질 개선을 대마불사(too big to fail)는 미국 금융산업의 최대 리스크로 지목된다. 리먼이 파산할 당시 자산규모는 미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했고 메릴린치는 이보다 더 큰 7% 수준이었다. 각각 300조원쯤 되는 국내 4대 지주은행 자산을 합치면 한 해 GDP를 능가한다. 4대 지주만으로도 충분히 커서 위험한 수준이다. 자산 몇 조원의 저축은행이 무너져도 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판이다. 대형화가 능사인가부터 답을 내야 한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대출금리가 내려가고 예금금리가 오르면 좋겠지만 이는 은행 빅뱅과는 거리가 멀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키울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