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남아공+우크라이나

북핵 문제는 선후(先後)의 문제이자 신뢰의 문제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북한은 미국이 먼저 체제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하면 체제안전 외에 경제지원이라는 당근도 주겠다고 유혹하고 있다. 북미협상은 신뢰의 문제 북한은 체제보장 방법으로 미국에 불가침조약체결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서면 불가침담보` 방안을 제시했는데 최근 북한이 이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조약형태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유연한 반응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후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폐기와 체제보장을 동시에 하자는 `동시행동` 방안을 내놓았으나 묘안 같지는 않다. 체제보장은 양국이 문서의 교환으로 끝낼 수 있는 절차지만 핵폐기는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절차가 완료될 때 까지 수년이 소요된다. 그 전까지는 핵폐기도, 체제보장도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취약성을 띠게 된다. 결국 북미협상은 선후 또는 동시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북핵문제를 푸는 두개의 방식이 있다. 남아공 방식과 우크라이나 방식이다. 남아공 방식은 북한의 핵보유와 폐기선언에, 우크라이나 방식은 폐기이후의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에 각각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이다.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뒤 자진해서 폐기한 유일한 나라가 남아공이다. 남아공의 소수 백인정부는 197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6개의 핵폭탄을 보유하게 됐다. 자국내 흑인세력과 주변 흑인국가들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미국이나 IAEA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백인정부의 위험이 현존한다는 판단에다 핵확산금지조약(NPT) 비회원국이라는 구실로 눈감아 주었다.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묵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던 중 남아공의 데 클레크 대통령은 1991년 흑백공존 정책을 추구하면서 핵무기 폐기와 NPT가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IAEA의 2년여 동안 실사를 거쳐 모든 핵무기는 폐기됐고, 흑인지도자 만델라 대통령을 거쳐 평화의 나라가 됐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남한도 1970년대 안보를 이유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으나 미국의 강력한 제지로 포기했다. 남북한 사이의 핵개발에 차이가 있다면 냉전기간동안 북한에는 강력한 제지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냉전시대는 갔다. 중국과 러시아가 변했고, 그것이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간의 교류와 화해는 남아공에 흑백공존 정책이 펴지는 상황에 비견할 만하다. 북한의 주변국 가운데 남한은 동족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우방이며, 일본도 수교의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며 대적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핵 때문이다. 미국이 남한과 중국ㆍ러시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을 공격하기는 어려운 여건이 형성돼 있다. 결국 핵만 폐기하면 북한에겐 적대국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이 같은 여건의 변화를 인식한다면 선후나 동시에 구애받지 말고 남아공처럼 핵의 폐기를 먼저 선언하는 것이다. 남아공 선택해 우크라 혜택을 그 후엔 우크라이나 방식을 따르면 된다. 구 소련의 해체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소련의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러시아의 안전보장ㆍ경제지원 약속아래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거나 폐기했다. 중국이 주선하는 2차 6자회담이 곧 열릴 전망이다. 이 회담에서 한ㆍ미ㆍ일ㆍ중ㆍ러가 북한의 체제안보를 보장해 준다면 우크라이나 방식보다 훨씬 튼튼한 보장이 될 것이다. 북한이 남아공의 길을 선택해서 우크라이나의 혜택을 받기를 바란다. <논설실장 imjk@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