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25> 충성 강요하는 '주군' 매력 없어요


동양인들에게 ‘충성’은 많은 것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영어 단어인 ‘로열티(loyalty)’를 한글로 번역하면 충성이지만 속뜻은 조금 다르게 쓰입니다. 동양권에서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던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누군가를 리더 또는 주군으로 모시면 그 외에 다른 아젠다가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자신의 용도는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표시를 남기는 것이죠. 충성을 받는 사람 역시 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단 자신의 부하에게 부과된 미래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저 사람 밑에 있으면 밥을 굶지는 않겠구나’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정에 의해 또는 명분에 의해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한다면 결국 아무리 강력한 지배자라 할지라도 온전한 존경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모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몬 주군을 치기 위한 하극상이 빈번했습니다.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주종관계를 깨 버리고 봉기하는 것입니다. 이 처신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신의 부하를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닌 사적인 소유물로 바라보는 주인들의 지위는 오래 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조직 리더들 중에도 이런 위기에 봉착한 인물이 꽤 있는 듯 합니다. 삼국지나 수호전에서 보는 남자들끼리의 일방적 충성과 결기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그 구도를 강요하는 이들이 꽤 목격됩니다. 특히 요즘은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개개인의 생존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죠. 모든 조직의 영향력과 통제력이 쇠퇴해 가는 오늘날, 자신의 아랫사람을 정해진 틀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생각임에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에게 맞춤화된 충성을 요구하는 편이 낫습니다. 당근이 필요한 이에겐 과감하게 인센티브를 던져주고, 나름의 자유가 필요한 이에게는 가장된 자유라 할지라도 보장해 주려는 시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앞뒤 사정 없이 일방적인 도의와 내용을 강요하는 충성은 때때로 ‘양심고백’과 ‘내부 고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도덕적 해이는 회피하면서 남의 약점을 잡아 점유하려는 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얼마 전 파문를 일으켰던 서울대 수학과 강 모 교수 사건, 학회장까지 지낸 중진인 경영대 박 모 교수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랫사람을 한 사람의 소유물로 바라보고 ‘끝까지’ 충성하라는 시각은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게다가 한국의 ‘꼰대’들은 권력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짜 권력은 쥐지 못하면서 별로 영양가도 없는 상대방에게 ‘갑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진정한 개혁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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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오늘날 과도하게 리더들의 지위가 흔들리는 이유는 예전에는 교과서적으로 받아들였던 일방적인 믿음과 대가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런 시대에 상대방에게 의무와 도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가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리더는 어떨까요. 오늘 ABC 방송은 오바마 대통령의 미담을 보여줬습니다. 백악관에서 헬기를 타고 내리다가 우산이 기내에 하나 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여비서들을 두 명이나 기다리면서 그들을 감싸고 보호하며 건물까지 들어가는 모습이 화제가 됐습니다. 연출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이런 ‘주군’은 너무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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