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거래소 M&A 열풍, 내셔널리즘 장벽에 가로막히나

국가경제 상징 거래소 합병 국민 정서상 용납 못하고 정치권도 국익 앞세워 제동<br>"국가주의, 시장 지지 못받아 통합 열기 잠재우진 못할것"


"거래소는 국민들 사이에서 원유처럼 국가 자산이자 국가 자존심의 상징으로 통한다. 거래소 인수·합병(M&A) 시장에는 내셔널리즘이 강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 -주식중개 전문업체 리퀴드네트의 세스 메린 최고경영자(CEO)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거래소 M&A 시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국경선이 뚜렷이 새겨지고 있다. 올 초부터 거래소 시장에 국경을 초월한 합종연횡 붐이 일고 있지만 동시에 합병이 무산됐거나 합병 절차가 내셔널리즘 장벽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도 잇달아 들려오고 있다. 통합을 목전에 뒀던 싱가포르거래소(SGX)와 호주증권거래소(ASX)는 호주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로 합병 계획이 물거품이 됐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유로넥스트와 독일 도이체뵈르세 합병건은 또 다른 미국 거래소 업체 나스닥이 뛰어들며 국가 대항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LSE)와 캐나다 토론토거래소(TMX)도 지난 2월 합병에 합의했지만 캐나다 정치권과 중소기업들의 반발 여론이 거세 거래가 최종 성사될지 미지수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비용을 감축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덩치 불리기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소들은 내셔널리즘은 반 시장 논리라며 M&A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도 각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향후 글로벌 거래소 시장은 결국 소수의 대형 거래소들로 교통정리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3대 상징물 중 하나인 거래소 합병, 국민 정서 거슬러 = 거래소 M&A가 일반 기업 M&A보다 유독 더 많은 잡음에 시달리는 것은 거래소가 한 나라의 경제를 대표하는 상징물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거래소 전문 컨설팅회사 옥스퍼드 파이낸셜그룹의 루번 리 CEO는 "한 국가는 보통 나라를 대표하는 3개의 상징물을 갖는다. 그것은 항공사와 깃발, 그리고 거래소다"라고 말했다. 이런 거래소가 외국 자본에 넘어간다는 것은 국민 정서상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주가 ASX와 SGX의 통합에서 반기를 든 가장 큰 이유도 국가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거래소 합병은 글로벌 기업 합병 규모보다 훨씬 작음에도 국민들이 강하게 반대한다"며 "호주인들은 싱가포르라는 작은 나라에 자국 거래소를 넘겨주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 로펌회사 폴, 해스팅즈에서 근무하는 스캇 삭스는 "거래소는 한 나라의 경제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national player)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며 "아직은 잠잠하지만 미국내에서도 독일 도이체뵈르세가 합병사 지분의 60%를 갖는 것에 대해 반발 여론이 고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국익 손실ㆍ중소기업 푸대접' 앞세워 반대 = 특히 각국 정치인들은 '국익 손실' 근거를 내세워 거래소 합병 반대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웨인 스완 호주 재무상은 이달 초 "SGX와 AGX가 합병될 경우 많은 일자리가 싱가포르로 넘어가게 되고 외국인들이 호주에 투자한 자금도 싱가포르로 흘러 들어갈 위험이 있어 국익에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며 합병 결렬을 선언했다. 스완 재무상은 호주의 '경제 주권 상실'까지 운운했다. 정치인들은 또 통합 거래소가 글로벌 대기업만 신경 쓰고 중소기업은 홀대할 것이라며 반대 깃발을 치켜들고 있다. 캐나다 정치권은 "LSE와 TMX가 통합될 경우 캐나다 중· 소형 광산·천연자원 업체들이 자금 조달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 캐나다 국익에도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데이비드 윌드 전 나스닥 부의장은 "통합 거래소는 대기업에 유리한 반면 중소기업에는 확실히 불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치권이 진짜 반발하는 이유는 거래소가 합병되면 자신들이 자국 금융 시장에 행사한 영향력이 줄 것을 우려해서"라고 꼬집었다. 미 경제전문 방송 CNBC는 "NYSE 인수를 저울질하고 있던 나스닥이 뒤늦게 인수 전에 뛰어든 것도 NYSE를 독일 자본에 넘겨 줄까봐 노심초사한 미 정치권이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반시장적 내셔널리즘, M&A 열풍 잠재우지 못해= 이렇듯 거래소 합병 시장에 내셔널리즘 물결이 넘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래소 통합 열기를 가로막을 수 있을지 회의론도 적지 않다. 무디스의 매트 로빈슨 수석 애널리스트는 "내셔널리즘은 주관적이고 반시장적이자 자칫 외국 혐오주의로까지 비춰질 수 있다"며 "내셔널리즘은 시장에서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하키 호주 재무부장관도 "스완 재무장관은 객관적 수치가 결여된 국익 논리를 앞세워 정상적인 시장 거래를 가로 막았다 "며 "호주 정부의 합병 불가 결정으로 호주는 3류 국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WSJ은 "내셔널리즘 열기에도 불구하고 거래소 통합은 가속화 해 앞으로 전 세계에 한 자릿수 거래소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며 " 향후 2~3개의 '공룡' 거래소만 남을 것이란 전망이 결코 뻔한 결론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