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토요 Watch] 올가을엔 '꽃보다 비엔날레'

서울서 광주·부산까지 전국이 축제… 다양한 테마로 가족·연인 예술여행 제격


올가을 대한민국은 '비엔날레(Biennale)'로 단풍보다 더 화려하게 물든다. '꽃보다 할배'의 패기 넘치는 배낭여행이나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는 '꽃보다 청춘'도 좋지만 다양한 비엔날레가 잇달아 열리는 이번 가을에는 비엔날레를 따라가는 '꽃보다 비엔날레' 여행을 놓칠 수 없다.

이탈리아어인 비엔날레는 원래 '2년마다 한번씩'이라는 뜻이지만 지난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결혼을 기념하며 시작된 국제현대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가 최초로 열린 이래 지금까지 위상을 이어와 이제는 비엔날레가 2년에 한번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라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올해 창설 2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가 '세계 5대 비엔날레'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서울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부산에서는 바다미술제와 청년미술제가 결합한 '부산비엔날레'가 짝수해마다 열려 권위를 쌓아가고 있다. 또한 대구에서는 '사진'으로 장르를 특화한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충남 공주에서는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야외미술 축제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열리며 비교적 '어린' 비엔날레로 대전시립미술관이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목표로 기획한 '프로젝트대전'과 유원지였으나 버려진 섬으로 전락한 돝섬을 중심으로 한 '창원조각비엔날레'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각 비엔날레의 특성을 알아두면 취향에 맞게 관람지를 결정하기가 쉽다.

미디어시티 서울, 단풍 물든 덕수궁 돌담길 따라 亞역사 다룬 미디어아트 향연

◇덕수궁 돌담길 따라 '미디어시티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며 미디어아트로 특화된 미디어시티 서울은 올해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다소 괴기하고 뜬금없는 주제로 지난 2일 개막했다. 현대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박찬경 예술감독이 설정한 이 주제는 역사에서 누락된 유령으로 표현되는 아시아의 굴곡진 근현대사, 식민과 냉전의 시대 경험을 비롯해 이 시대를 견뎌낸 여성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운다는 다층적 의미를 깔고 있다. 아시아성이라는 심오한 화두를 재치있는 단어들로 풀어낸 셈이다. '미디어아트'가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림이나 조각 같은 전통적 미술에서 진화해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현대미술 전체를 아우른다고 생각하면 다소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 영상작품과 설치작품이 주를 이루므로 다양한 이야기가 큰 주제로 묶인 '옴니버스식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올해는 양혜규·최원준·배영환 등 국내 작가를 비롯해 17개국 42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서울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양혜규는 전시장 입구와 3층에 방울을 주재료로 한 '소리 나는 조각'을 선보였는데 수많은 방울은 물리적 움직임이나 바람 등과 어우러지며 예상치 못한 '쇳소리'를 내면서 시공간을 확장한다. 일본작가 요네다 도모코는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전 일본에서 암호명 람세이로 불리던 리하르트 조르게의 간첩조직이 체포된 사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11월23일까지 계속되는 이 비엔날레는 단풍길이 운치 있는 덕수궁, 정동길 옆 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며 일부 작품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한 도심여행자들이 선택한다면 후회 없을 비엔날레다.


광주비엔날레, 광주 민주화 항쟁 기반으로 시대정신·역사 예술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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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역사성의 광주비엔날레=국내에서 열리는 여러 비엔날레 중 굳이 으뜸을 꼽으라면 광주비엔날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던 마시밀리아노 조니는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으로 활약했고 2008년 총감독을 지낸 오쿠이 엔위저가 오는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임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광주의 민주항쟁 정신을 기반으로 탄생한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을 통해 역사의식과 시대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서왔다. 특히 올해는 뉴욕의 진보적 그룹 토킹헤즈의 곡명에서 따온 '터전을 불태우라'는 도발적인 주제 아래 5일 역동적인 전시가 공개됐다. 터전이 기존의 제도·기득권 등을 가리킨다면 '불태우라'는 것은 없애고 다시 세우라는 전복을 뜻한다. 나무를 실제로 태우는 대형 난로작품을 야외에 설치한 미국작가 스털링 루비 등 출품작 가운데는 타오르는 불길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상당수다. 현대미술의 세계적 경향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더불어 시대정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다면 광주비엔날레가 제격이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인 제러미 델러를 비롯한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총출동했고 한국의 이불·윤석남 등 39개국 작가 115명이 참여했다. 영국의 국립 테이트모던미술관 큐레이터인 제시카 모건이 총감독을 맡아 11월9일까지 계속된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함께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은 정치풍자 그림으로 작품 철수 논란이 일었던 화제의 전시다.

부산비엔날레, 한적한 바다 음미하며 삶 고찰… '행사 보이콧 퍼포먼스'도 눈길

◇삶을 고찰하는 '부산비엔날레'=20일 개막하는 부산비엔날레는 한여름 인파가 빠져나간 한적한 바다를 음미하며 전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프랑스 출신 올리비에 케플렝 감독이 기획한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불안정한 세상에서 그냥 살아갈 것인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세상 속에서 거주하기'라는 질문을 던진다. 철학적 주제지만 난해하고 모호한 면도 없지 않아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와 이해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30개국 작가 160명이 참여했다. 본전시 외에 아카이브 전시, 아시아 젊은 기획자들이 머리를 맞댄 특별전도 마련됐다. 올 부산비엔날레는 감독 선임과정에서 1등으로 뽑힌 한국인 감독을 뒤로하고 프랑스인 감독이 지휘권을 잡아 미술계에서 참여거부 움직임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잡음을 반영해 비엔날레 기간 중 프랑스 여인이 관람객에게 바게트 빵을 나눠주는 '보이콧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으니 이 또한 볼거리다. 비엔날레는 11월22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 등지에서 열린다.

대구사진비엔날레·프로젝트 대전, 디지털카메라로 본 세상 만끽…'인간의 뇌' 등 과학·예술 융합

◇사진·과학융합·조각 등 특화 비엔날레=디지털카메라 보급으로 사진 애호 인구가 급증했다. 이들을 유혹하는 대구사진비엔날레가 '포토그래픽 내러티브(사진의 기억)'라는 주제로 12일 개막해 10월19일까지 이어진다. 사진의 표현기법과 사진 본래의 정체성을 다룬 전시로 주전시는 '기원, 기억, 패러디'를 주제로 18개국 30여명의 작가가 참여해 콜라주·비디오아트·설치작업까지 선보이다. 안젤로 조에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장이 큐레이터를 맡은 이탈리아 현대사진전, '전쟁 속의 여성' 등 작은 전시들도 함께 열린다.

융합형 비엔날레인 '프로젝트 대전'은 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인간의 뇌'로 설정하고 이를 주제로 과학의 예술적 사용에 도전한다. 기억과 생각 등 뇌의 추상적 역할부터 정신분석학·감성학·인식론 등 인지과학의 다양한 차원에 다가서는 전시라 기대를 모은다. 국내외 예술가 40명뿐 아니라 실제 과학자들도 참여해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인간의 뇌'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는 '인공의 뇌'에 집중한 주제를 조형적·이론적으로 펼쳐 보인다. 11월22일 개막해 내년 2월22일까지 계속된다. 창조경영의 영감을 비롯해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마른 사람들이 다녀오면 좋을 전시다.

창원에서는 조각을 내세운 비엔날레가 열린다. 유원지였으나 지금은 버려지다시피 한 돝섬을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조성했는가 하면 마산항 중앙부두와 창동 일대도 예술지역으로 변신한다. 2회인 올해는 '달그림자(月影)'를 주제로 25일 개막해 11월9일까지 열린다. 최태만 예술감독과 김지연 큐레이터가 앞장서 11개국 작가 41팀을 끌어모았다. 예술의 공공성을 강조해 시민참여형 작품을 다수 선보이며 도시 곳곳의 설치작품과 퍼포먼스 등 조각의 영역확장까지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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