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포함한 전국 200여곳 분향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루만 더 지나면 영영 이별이라는 생각에 시민들은 근처 분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으로 봉하마을 사저 앞 분향소에 나와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날 오전11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서울역 광장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추모 열기 고조=노 전 대통령 서거 엿새째인 이날 봉하마을 진입로에서 분향소까지 이르는 2㎞ 구간은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탓인지 조문객들의 분위기는 더욱 엄숙했고 상당수 추모객들은 서울로 떠나기 전 발인제를 지켜보기 위해 아예 봉하마을에서 밤을 샐 작정으로 온 듯했다.
한 추모객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려고 이틀간 휴가를 받아왔다”며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로 떠나기 전 내일 새벽까지 봉하마을에 머물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 여사는 이날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으로 분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정색 한복의 상복 차림으로 오전7시20분께 분향소를 찾은 권 여사는 직접 노 전 대통령 영정에 헌화한 뒤 각지에서 온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두 차례나 90도 가까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참여정부 측의 한 관계자는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직접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는 권 여사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건강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버티면서 인사를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가족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을 안치할 장지를 최종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서는 정치하지 마세요”=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는 마을 어귀 양편에서부터 나부끼는 700여장의 만장으로 전국에서 찾은 추모객들을 숙연하게 했다. 노사모 회원들이 흰색ㆍ검정ㆍ노랑 천에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이틀 동안 만들어 세운 만장에는 고인에 대한 애석함ㆍ그리움ㆍ안타까움 등의 작별 인사가 적혀 있었다.
만장에는 ‘거기에서는 정치하지 마세요’ ‘조금만 참으시지 그랬나요’ ‘당신은 항상 낮은 분이셨는데’ 등 고인을 떠올리게 하는 글귀들이 추모객들을 숙연하게 했다.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친구들과 대구에서 왔다는 김모(18) 양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이 그냥 좋았다”며 “만장에 적힌 내용들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농번기인데도 오전부터 봉하마을을 찾아온 나이든 농부들도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한 손에 손수건을 들고 바삐 걷는 할머니와 양복에 운동화를 신고 금방 농사일을 끝내고 온 듯한 노부부는 “농사일도 바쁘지만 착한 대통령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왔다”며 애석해 했다.
◇발인식에 추모객 몰릴 듯=29일 오전5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에도 많은 추모객들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28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들은 분향소를 조문하고 부엉이바위 쪽으로 가면서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이들의 대화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내일 새벽 다시 봉하마을에 옵시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실제 봉하마을과 가까운 진영읍 내 숙박업소에는 예약을 문의하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고 일부 조문객들은 텐트까지 가져와 설치했다.
김해에서 세살배기 아들과 함께 지난 23일 봉하마을에 와 텐트를 치고 숙식하는 이향희(50)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발인식까지 보려고 봉하마을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발인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예 직장에 휴가를 내고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덕수궁 분향소도 추모 열기 계속=낮 최고기온이 27도를 웃돌았지만 덕수궁 인근에는 2,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줄지어 기다렸다.
추모객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지친 기색 없이 엄숙한 마음으로 고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을 아파했다. 특히 아래 위 하얀 소복 차림에 가슴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분향소를 찾은 백발의 한 할머니는 걷기조차 힘겨워보였지만 영정에 헌화한 뒤 침통해 하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서울역 분향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은 조문 뒤 “노 전 대통령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국민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