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선자령 설원에서

날자 :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07:12 :본사 정문 출발 07:44 :천호역 출발 09:18-50 :소사휴게소 10:35 :대관령 구 고속도로 휴게소 12:30 :선자령 도착 13:30 :선자령 출발 13:45 :선자령 나즈목 (선자령0.9km, 보현사 2.5km, 곤신봉 1.6km, 대공산성 2.6km) 14:50-15:00 :보현사 15:50 :보광초교앞 출발 (보현사-보광초교 4km) 16:47 :속사 방아다리산방 도착 18:27 :방아다리 산방 출발 (황토굴 한증막) 19:30 : 문막 휴게소 21:30 :천호역 도착 22:20 :집도착 등산로: 대관령 휴게소 (10:35) - 국사성황당 -KT 통신탑 - 건물 -새봉 - 선자령 (1157m) - 선자령 나즈막(13:45) -보현사 - 보광초교 (15:40) 금시초문의 선자령 이번 한국일보 ``초록산악회``의 산행계획이 나오면서 처음 들어본 선자령(仙子嶺:1,157m). 황병산(1,407m)과 매봉 (1,173m)사이의 대관령 삼양목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이라면 처음 듣는 사람들이 위치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을는지. 선자(또는 仙者)는 신선(神仙)의 다른 말로 신선들이 놀았다는 데서 붙여진 듯한 이 고개의 등산은 영동 고속도로 구 대관령 북쪽 휴게소에서 시작한다. 기후상의 큰 차이로 영동과 영서라는 지방을 만들어 놓은 한반도 백두대간의 중요한 등뼈구간. 해발 832m인 대관령 고개에서 선자령까지 높이는 기껏 325m라 두어 구간만 빼면 거의 탁트인 넓은 평지를 가볍게 트레킹하는 기분. 구 고속도로를 가로 질러 산행 들머리를 들어 서자마다 물푸레 나무들이 냉큼 얼굴을 내밀고 반가워한다. 그 다음 낙엽송과 소나무, 전나무들이 듬성듬성 길 양옆으로 섞여 서 있다. 한국통신 송신탑 아래까지 넓은 비탈에 2-3년생의 전나무를 식재해 놓고 각 어린 나무에 모기장을 댄 삼각대 바람막이를 해 주었다. 한길 반이나 되는 긴 방풍 목책이 지나는 길가에 띄엄띄엄 있는 것도 여느 산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강원도에 눈이 많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이곳은 그저 설국(雪國)이다. 지난 토요일 차대장님이 사전 답사에서도 눈이 너무 내려 이 곳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왔다 그냥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이고 보면 눈이 많이 녹았다는 얘기다. 참나무 같은 군락지가 대부분 넓은 능선 동쪽에 자리잡고 있고 지나는 길과 서쪽으로는 넓은 목초지이거나, 장티부스 앓은 사람 머리처럼 큰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는 지역들. 전반적으로 동서남북 조망이 잘 되는 산행 코스다. 북서풍이 많은 서쪽 기슭에는 나무들이 땅에 바짝 기거나 서 있어도 뒤틀려 제 모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보통 마을 길가나 산자락에서는 늘씬한 키에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뻗기로 유명한 낙엽송이 북서쪽으로는 가지를 전혀 볼 수 없고, 남동쪽으로만 나 있는 게 마치 삼각깃발 풍향계를 연상하게 한다. 곁 가지의 두께를 보면 연륜도 꽤 되어 보이는데 일년 내내 불어오는 바람으로 크지 못한 게 역력하고 그나마도 곧지 못하다. 자연과의 처절한 싸움의 결과다. 그리고 이 고난은 이들이 자리를 뜨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바람과 눈이 만들어 내는 설경 선자령은 눈과 바람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할 만큼 겨울 산행객을 유혹하는 곳이란다. 그런데 이날 따라 바람이 게으름을 피운다. 이마의 젖은 땀을 씻어줄 정도이니 겨울 삭풍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김재동부장이 잰 온도가 영상 10도였으니 봄기운이 이 1,100m가 넘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온에 바람의 여신이 제 실력 발휘가 안될 성 싶어 그냥 포기했거나 그녀도 5일 근무제를 도입 주말을 쉬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선자령 두 맛 중 칼바람의 매서운 맛은 느끼지 못하였다. 넓게 펼쳐진 목초지는 거두고 남은 마른 풀줄기가 조금씩 눈위로 삐져나와 무심코 보면 눈썰매장을 만들다 만 느낌이다. 한일 농장 목초지인 것 같다.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깊은 골을 넘어 서쪽으로 산 정상을 깍아 만든 넓은 평지가 쉽사리 눈에 들어오는데 역시 은백의 눈으로 덮여있다. 지도에서 보면 삼양축산 목초지쯤 되는 것 같다. 앞쪽이 삼양 목초지 눈이 많은 것은 동해에서 불어오는 습기를 흠뻑 머금은 바람과 건조하고 차가운 편서풍이 이 곳 백두대간 등걸에서 랑데부해 빚어진 것이란다. 보통 겨울이면 1 미터 이상을 쏟아낸단다. 한반도가 좁은 땅덩어리이긴 하지만, 사철이 뚜렷하고 높은 산이 많아 외국을 연상케하는 지역이 많다. 이 곳도 스위스 알프스라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행 길은 눈이 다져져 발자국을 따라가면 되지만 조금만 옆을 잘 못 디디면 무릎까지 빠진다. 특히 경사가 급한 북동쪽 하산길에는 헛발을 디디면 상당히 난처한 지경에 처할지도 모르게 되어있다. 비탈 밑으로 뚝 떨어진다던가 한길 가까이 빠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는 북서풍이 상당히 기여를 한 것이다. 이 바람은 또 갖가지 크고 작은 조각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사하라사막이나 고비사막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라면 쉽게 연상이 될는지. 모래 대신 하얀 눈일 뿐이다. 지나는 한 여산행객이 동료에게 비탈면을 보면서 마치 군데 군데 묘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단다. 용평 스키장과 올림픽 고개를 등뒤로 돌리니 남서쪽으로 산정상에서부터 세 갈래로 눈길이 선명한데 누구의 눈으로도 쉽게 들어온다. 용평 스키장이 있는 발왕산 (1,458m)으로 역시 백두대간의 우뚝한 봉우리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2010년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 평가단을 환영한다는 전광판(Welcome 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s)이 언듯 눈에 들어오고 하늘에는 기구들도 보였다. 시설 평가를 위해 4일 일정으로 평창에 오는 날이란다. 한국 최초로 1985년 개장한 국내 대표격인 용평 스키장이 오늘 (토요일) 조사단들에게 첫 선 보이는 날. 화장빨(눈)이 좋아 합격 점을 맞을 수 있을런지… 선자령을 오르기 바로 밑의 눈밭이 된 목초지에 집결했다. 증명사진 한 컷 정도는 필요한 거란다. 차대장님은 뒤쳐진 회원들을 재촉하며 ``숨을 쉬지 말고” 오란다. 늦게 오는 사람에 다그칠(?) 때 차대장님이 쓰는 특허청에서 인증받은 지적 소유권 중의 하나(?). 유머도 많고 헌신적이어서 대장으로써도 정말 적격이시다. 선자령을 선자봉으로 선자령 정상도 넓은 둔덕이다. 산봉우리 같은 느낌이 아니다.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이곳을 넘어 동쪽으로 초막교를 지나 강릉으로 다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들이 넘나들면서 고개(嶺)를 붙여 굳어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령이라 부르는데 대해 불만인 듯 싶다. 선자산(山)이 과하면 선자봉(峰)으로라도 승격 시켜달라는 눈치다. 양평의 용문산과 같은 키인데도 준령 백두대간에 있다보니 그렇게 됐나 보다. 매일 불어대는 북서풍으로 눈이 거의 씻겨내려가고 선자령 표지판도 안보인다. 동쪽으로는 강릉시내가 어렴풋이 들어오고 동해바다는 해무가 심해 하늘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12;30분: 여기에서 점을 찌기로 했다. 동쪽 산 아래로 조금 비껴 삼삼오오 나무아래 눈밭에 둘러 앉았다. 나는 김봉희국장, 김재동 부장과 자리를 잡았다. 김부장이 버너를 가져와 컵라면 세개에 뜨거운 물을 부을 수 있었고, 김밥 둘에 오곡밥이 있었으니 배가 너무 부를 수 밖에... 납작하고 조그만 수통형 술병에 김국장이 양주를 김부장이 칡술을 가져와 기분도 돋구었다. 출발전 단체사진 한 컷. 왼쪽부터 본인, 김국장, 김부장 하산은 애초에 세웠던 바로 아래 초막교쪽이 아니고 북쪽으로 곤신봉을 향했다. 눈이 선자령 올때까지와는 한결 다르다. 숲으로 난 눈길이 한층 더 깊다. 눈이 신발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스패츠를 하면 더 나을 성 싶다. 보현사로 내려가는 안부(선자령 나즈목)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동쪽으로 하산하기 전 옆 눈밭에서 기념 촬영들을 한다. 계속 북으로 직진하면, 매봉, 노인봉, 진고개를 지나 오대산으로 접어들어 대간을 북으로 달릴 수 있다. 급경사의 보현사 가는길 경사가 간단치 않다. 눈은 더 쌓여있고, 아이젠도 정신이 나간 듯 제기능을 잃었다. 나뭇가지를 움켜잡으면서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잘못 옆을 헛디딜 것 같으면 비탈로 떨어진다. 김부장이 한번 애를 먹었단다. 넘어지는 사람도 물론 생겨난다. 나도 두 번이나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차대장님은 미끄럼을 타보며, 뒤따라 오는 사람들은 반들반들하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내려가느냐며 성토한다. 보현사에 가까워지니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물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넓적한 바위는 저마다 제키 넘게 눈을 이고 있다. 대동강으로부터 우수(2월 19일)가 가까워졌다는 전갈을 받았는지 바위를 돌아 얼음 녹은 눈 아래로 물소리가 부드럽다. 눈 속의 봄기운이다. 그렇게 해서 1시간 정도를 내려오니 1,000년 넘는 역사가 깃든 보현사다 (2.5km 하산:2시 50분). 보현사에서 아이젠을 풀고 물을 한 바가지씩 들이켰다. 윤회장님은 부처님에 예의를 갖추고 나오시고 김부장은 시주하고 기와에 아들딸을 이름을 새겼단다. 여기서부터는 시멘트 길. 길가에 눈 녹아내리는 게 빗물 흘러내리듯 한다. 산밑에 타조 농장도 보이고, 길가 농가의 우리에는 부엉이 두 마리가 부엉 부엉 울고, 느릅나무 밭과 팔려나갈 미끔한 소나무가 모여있는 곳도 보인다. 새로 난 4차선 고속도로가 상하행 2차선씩 산을 뚫고 나와 하늘을 나는 것 같이 한참 높이에서 지나가기도 한다. 보광초등학교까지 4km의 시멘트길을 50여분 걸어 오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실전만큼 중요한 게 없어 속사에서 고속도로를 내려 평창 방아다리 약수터에 들어가 방아다리산방에서 목욕하고 저녁을 먹기로 되어있다. 구 고속도로를 타고 구절양장의 대관령 고개를 향해 가는데 서쪽 산위로 아까 오르면서 본 한국통신 송신탑등이 눈에 들어 온다. 예전에 이 길을 다니지 않은 것도 아닌데 오늘에야 또렷이 들어오는 것은 내가 거기를 올랐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경험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가는 이것이 아니라도 쉽게 알았던 터다. 많은 경험을 갖는 것이 책을 읽어 간접적으로 얻는 것 보다 훨씬 값지며 생생하다는 뜻이다. 꼬불 꼬불 고개를 달리는 맛이 직선으로 난 새 고속도로를 타는 맛과 또 다른 것 같다. 또 한번 새 고속도로가 머리 높이서 가로 질러간다. 방아다리 여탕 황토방에서 한시간 가량 달려 계곡 산방에 들어서니 목조가옥 북사면 처마에 고드름이 팔길이 넘게 발을 내려 치고있고 지붕은 겹겹의 하얀 시루떡을 이고 있는 것 같다. 산방의 황토방 한증막 (033/333-0606)으로 안내를 한다. 차대장님은 ``29분”만 하고 나오란다. 들어가다 보니 탕 출입문에 여자탕이라 쓰여있다. 여자가 없어 죄가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불법 무기 소지죄”에 해당한단다. 여자 황토방은 크고 남자용은 작아 여탕으로 안내했다는 것이다. 일행은 남자 25명에 여자 3명. 여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뜻이다. 목욕료도 여자는 7,000원 남자는 5,000원. 소나무 장작불로 황토방을 달군다는데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아 제대로 찜질도 못하고 나왔지만 황토방이란 곳을 처음 들어가봤다. 그것도 여탕을. 뭐 다를게있겠냐만은… 여자 셋은 남탕에 들어 갔으니 ``방화죄”에 해당 할텐데, 남정네가 없었으니 역시 불이 나지는 않았다. 13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과는 달리 남정네들이 있었으면 정말 불(?)이 붙었을텐데... 차대장님은 전화로 예약하는데 남자와 여자의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길래 왜 그러나 싶었는데 그제서야 아셨단다. 목욕을 하고 나니 시장끼도 든다. 식당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혹시 안올지 몰라서 그런지 주인 할머니께서 밥준비가 늦었다. 할머니만 아니었다면 주방의 따님은 혼 줄 났을 거라는 차대장님의 말씀. 정월 보름(당일) 나물에 좁쌀 막걸리로 먼저 목을 축였다. 늦게 나온 식사며, 된장, 두부, 겨울 지낸 장독 김치도 시원하다며 다들 맛있어한다. 오곡밥도 호박나물과 함께 내 놓으신다. 다들 배가 불러 어쩔 줄을 모르고 막걸리를 많이 해 차속에서의 걱정이 태산 같단다. 그 길로 문막 찍고 천호역에 오니 3시간이 지난 9시 30분. 일요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녹슨 기계를 억지로 돌린 것처럼 온몸이 삐끄덕 삐끄덕했다. 등산을 위해 이렇게 일찍부터 7시 출발에 맞추자니 집에서 컴컴한 시각인 6시 10분 출발. 회사에서 모여 10분 늦게 버스로 중부고속도로로 향한다. 광장동 고개를 넘어서니 붉은 아침해가 검단산 능선에 걸려있다. (7:35) 날씨가 좋을 거라는 징조다. 천호역에서 일부 회원을 픽업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호법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강원도로 들어서니 눈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고속도로 시야는 괜찮은데, 서리가 많이 내렸고 주위 산아래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이 역시 날씨가 좋을 거라는 징표다. 소사(횡계)휴게소에서 살짝 찍고 구대관령 북부 휴게소에 이르니 10시 35분. 폐쇄된 이 곳에는 치우지않아 눈이 꽤 쌓여있다. 휴게소매점건물과 주유소는 폐허가 되어있고 동쪽 언덕 위에 서 있는 고속도로 건설 기념비도 어찌 초라해 보인다. 자연은 그대로 있으면 있을수록 보기가 좋은데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은 사람손이 계속 닿지 않으면 어느새 흉물로 변해버린다. 컵라면 세개를 픽업 트럭에서 사 들었다. 등산인원 28명 (윤세일, 정기훈, 박해상, 제갈홍, 정수열, 이승만, 김흥만, 이광래, 뭉홍영, 이태권, 이원구, 이재환, 임상빈, 김봉희, 김재동, 김윤찬, 이형구, 권병욱, 이진석, 오세웅, 권숙창, 김연희, 권찬호, 차말철, 김송연, 채희묵)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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