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북아 판도변화(세계금융질서 재편)

◎미 자본 라이벌없이 독주한다/일·중·러 등 경쟁상대 경제위기 모면 급급 미 견제 겨를없어아시아 경제 침몰은 좁게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 넓게는 환태평양 경제권의 역학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4대 강국 모두가 아시아 경제 위기에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과거 동서 냉전시대와는 다른 차원에서 동북아 질서가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1일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이행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은 한국에 금융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며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도 『한국정부와 IMF의 타결이 한국 경제의 안정과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미국이 IMF라는 다국적 자본을 앞세워 한국 경제 구제에 나선 것은 어쩌면 지난 50년 유엔 다국적군의 깃발 아래 한국전에 참전한 것과 비슷하다. 반세기전, UN군이 한국군의 지휘권을 이양받은 것처럼 IMF는 한국의 거시경제 조정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 경제 파국을 막기 위해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때 일본 방위를 위해 참전을 주장하던 펜타곤 참모들과 같은 논리다. 과거 유엔군이나 현재의 IMF에 최대의 자원을 제공하고 이를 움직인 것은 물론 미국이다. 50년에 가까운 기간 사이에 군대와 자본이라는 상황만 달라졌을뿐 미국은 아시아의 도미노를 막기 위해 한국에 또다시 지원을 선언했다. 미국이 동아시아 경제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지금까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일본과 21세기의 잠재적 경쟁 상대로 지목됐던 중화경제권은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교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홍콩,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지난 여름 이후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져 있고, 중국 본토도 평가절하 압력을 받고 있다. 중국은 외환보유고가 1천3백억 달러로 넉넉한데다 단기 채무가 거의 없고, 국제 핫머니가 투기를 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통화 폭락사태는 없을 것으로 외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원화가 지난 94년이후 달러 대비 25%나 절상 됐으며, 중국의 수출 경쟁국인 동남아 국가의 통화가 일제히 평가절하됐기 때문에 절하 요인이 커지고 있다. 또 중국 은행들의 부실대출이 확대되고 있으며, 올들어 외국인 투자가 전년보다 35%나 줄어드는등 거대경제권이 아시아 경제위기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은 국내 경제병을 치유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IMF에 거액의 찬조금을 내기를 꺼리고 있다는게 미국의 시각이다. 지난달 루빈 미재무장관이 일본 대장성에 사신을 보내 아시아 사태, 특히 한국경제 위기 해결에 지원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동북아의 또다른 강국인 러시아도 아시아 위기로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놓은 상태. 러시아 중앙은행은 아시아 시장의 동요로 40억 달러의 외환이 빠져나갔다고 주장했으며,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관련 장관을 경질할 움직임을 보이는등 동요가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 경제 위기가 한반도 문제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으로 지난달 21일 뉴욕에서 열린 4자 회담 예비회담을 들수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그동안 한국정부의 지원에 난색을 보였던 북한측이 쉽게 본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은 한국의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 경제가 붕괴, 대외적인 지원 여력이 없어질 경우 북한으로선 경수로 원전 건설은 물론 두만강 개발등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이 무산될 위기에 놓일 것을 우려했다는 시각이다. 아시아 경제 추락은 또 아시아 국가의 정치 위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아시아의 지도자들이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번 위기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내년에 수하르토 대통령의 후계자를 뽑는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경제 위기로 집권당의 권위가 상당히 약화되고 있다. 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세계 언론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경제 위기가 아시아 질서 재편에 상당한 변화를 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뉴욕=김인영 특파원>

관련기사



김인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