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대책에도 불구하고 금융·외환시장이 동요, 오히려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우려했던 대로 예상한 결과다.대책이 실기한데다 그나마 어정쩡해서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정부대책이 신뢰를 얻지 못한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을 시장도 외면함으로써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바로 그날 환율은 한때 1달러당 9백4원50전으로 치솟았다. 다음날엔 9백9원50전까지 급등,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당국의 개입으로 8백90원80전까지 떨어져 널뛰기 양상을 보였다.
금리도 상승했다. 콜 금리가 0.21%포인트, 기업어음(CP) 할인율은 0.1%포인트 올랐다. 반면에 주가는 7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9월 금융대란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으며 국제투기꾼들이 한국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점이다.
환율상승이 수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임에 틀림없다. 달러가치상승같은 정상적인 변수에 의해 환율이 적절한 수준으로 오르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번처럼 엉뚱한 요인으로, 그것도 널뛰기 양상을 보이는 것은 물가나 환차손 부담을 키우고 기업수지 악화 등 경제안정을 흔드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
환율 상승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국제수지 악화로 달러가 부족한데다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외자조달이 어려워진데 있다. 대기업의 잇단 부도와 은행의 부실화로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해외차입이 잘 안되고 상환압력을 받아 달러 부족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미온적 대책에 따른 불신과 안정 기대감이 깨져 가수요가 겹쳤다. 뿐만 아니라 투기적 요소까지 가세, 환율을 가파르게 밀어올렸다.
환율안정을 위해 달러를 풀면 원화가 흡수된다. 금리가 오르지 않을 수없다. 금리가 오르고 경제가 불안하니 주가는 또 떨어질 게 뻔한 이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외환 투기꾼들이 한국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분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행과 외국 분석기관들이 이미 경고한 것이다. 제때에 방어하지 못하면 멕시코 사태와 최근의 동남아 위기를 우리라고 맞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분명한 방어 수단이 없어 더욱 우려스럽다. 무역수지·경상수지 적자는 부풀어 오르고 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외환보유액도 격감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의 권고액을 훨씬 밑돌고 있다. 외자도입 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데도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한 정부는 원칙과 시장논리만 고집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과 위기관리 능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아사태의 해법이 없는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은 효험을 잃었다.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사실상 깨졌다.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허상임이 드러났다.
혼돈의 금융외환시장을 안정시킬 믿음직한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