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고등어 반 마리 무 한 조각


고등어 반마리, 반의반 크기로 자른 무, 고추 3개, 양배추 반통.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 담긴 신선식품의 목록이다. 요즘 식품매장에서는 각종 농수산물을 한번 요리하기에 알맞은 크기로 작게 포장해 내놓으면서 미혼직장인, 신혼부부, 자녀를 출가시킨 장년층 부부가구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1~2인 가구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우리 음식 소비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하루 한끼 이상을 직장이나 학교에서 먹는 가구원이 늘어나면서 외식 서비스 의존도가 커지고 한 가정에서 구매하는 식료품의 양은 줄게 됐다. 이에 따라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 구입비가 차지하는 엥겔계수는 지난 2000년에 16.5였던 것이 2010년에는 13.9로 낮아졌고 농수산물 비중은 약 8% 정도에 불과하다. 스마트한 소비자들은 먹거리에 대한 선택기준도 변화시켰다. 싸게 많이 사서 두고두고 먹거나 버리는 것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먹을 만큼 구매하는 쪽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구매할 때마다 쉽게 품질을 확인할 수 있고 보관이 쉬운 점도 작용했다. 지난달 통계청에서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 개편 내용에도 이러한 식품소비 패턴의 변화가 반영됐다. 물가조사대상 품목에서 농수산물은 줄어들고 삼각김밥, 떡볶이 등 간편한 외식 식품들이 새로 포함됐다. 호박ㆍ참외ㆍ고등어ㆍ명태 등 농수산물 품목의 물가조사 대상 규격도 소비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크기로 줄여서 파악하기로 했다. 소비 패턴의 변화에 산지의 농어업인들도 발맞춰 가고 있다. 예전에는 농업인들이 과일을 대부분 15㎏박스에 포장해서 출하했지만 최근 몇 년새 10㎏박스로 단위를 줄인 경우가 많아졌다. 작은 단위의 포장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손이 더 많이 가고 비용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원하고 상품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생산농민들도 이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 어머님은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사과 한 상자, 생선 한 묶음씩 사오시고는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매년 봄마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먹거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물려받아 유독 크고 양 많은 것을 좋아한다고도 한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함께 보릿고개의 기억도 멀어지고 커다란 과일상자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취향과 구매방식에 맞게 우리 농어업 현장도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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