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면피공화국] 6. 정부 인사시스템 부재

공직자 임기 1년내외…전문성 갖출 시간없다"무엇 때문에 책임질 일을 합니까. 그저 주어진 일만 해도 제 임기 채우기에 바쁩니다" 모 중앙부처 K국장의 말이다. 사무관 시절 일 잘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짧은 기간에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전보와 승진을 하며 붙여진 그의 프로필에는 '추진력은 떨어지나 일처리가 매끄럽고 대과(大過)가 없다'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정부의 인사시스템 부재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누가 어느 자리를 맡아야 일을 책임지고 효율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보다는 경력이 얼마나 되었나, 실수는 없었는지가 오직 인사의 잣대다. 이러다 보니 공직자들은 아예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기반은 튼튼하다. 아무 걱정없다"고 주장하던 당시 고위 경제관료가 정작 환란이 터진뒤 책임을 묻자 "그 당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무책임한 말로 국민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또 최근에는 의약분업으로 국민들을 의료고통에 헤매게 하고 건강보험을 바닥나게 만든 당사자들이 되레 '책임질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 당시 상황을 지배했던 정치논리를 감안하더라도 국민들이 이해하기에는 힘든 얘기다. 이런 일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책임질 수 없도록 만든 정부의 인사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전문성 갖출 시간이 없다 10일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현정부가 출범한 97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중앙부처 일반직 실ㆍ국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11개월 18일이며, 과장급은 1년 2개월 14일이다. 특히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경제부처의 실ㆍ국장급 재직기간은 전체평균 보다도 훨씬 짧다. 기획예산처(7개월 26일)가 각종 위원회를 제외한 부처 가운데 가장 단기간에 실ㆍ국장을 교체했으며 금융감독위(9개월 26일), 산업자원부(9개월27일)가 그 뒤를 이었다. 또 재정경제부(10개월14일)와 중소기업청(10개월 29일)도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해당부서의 업무파악을 하고 새로운 정책을 입안해 추진하기에는 너무 촉박한 기간이다. 또 한가지 정책을 3~4명의 국장이 번갈아 추진하다 보니 그 일이 잘못돼도 책임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직위분류제' 도입해야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선 공무원 임용때 '기능'에 따라 직위를 분류한다. 각 직위마다 임무와 책임이 분명해 아무리 하위직이라도 자신이 한 일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세월만 지나면 과장ㆍ국장으로 승진하는 우리의 제도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도 99년부터 이 같은 직위분류제를 가미한 개방형 직위제도를 도입, 3급이상 131개 자리를 공무원뿐 아니라 민간에도 개방해 현재 91개 자리가 임용됐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반발 등 문제점으로 민간인이 채용된 직위는 14곳에 그치고 있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공무원 전문성 확보를 위해 쫓기듯 이 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문제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공직 풍토에서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키우고 책임있는 일을 추진하려면 개방형직위 제도를 보완, 확대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석영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