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1997년의 해외건설 데자뷔


지난 1996년 한국 건설업계는 '해외수주 사상 첫 100억달러 달성'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이 금액이 140억달러로 늘면서 한국 해외건설은 1980년대 중동붐 이후 제2의 르네상스를 맞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대와 흥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해 11월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우리나라는 물론 태국 등 동남아 주요 국가에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우리 건설의 주력시장을 초토화시켰다. 사상 최고의 수주 실적이 가져다 준 기쁨도 잠시, 이듬해인 1998년 해외 건설수주액은 40억달러로 곤두박질치면서 깊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만 6개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한 대형건설사의 경우 이중 5개 현장이 멈춰서며 철수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금 한국 건설업계가 처한 상황은 마치 1997년의 '데자뷰(Déjà vu)'를 경험하는 듯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리비아를 비롯해 예멘ㆍ바레인 등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3대 해외건설시장인 리비아에서는 이미 격화된 내전으로 건설사들이 대부분 철수했다. 잇따른 대형 프로젝트 계획으로 올해 중동 플랜트 발주 최대시장으로 예상되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잇따른 민주화 요구로 몸살을 앓는다. 물론 업계는 지금의 사태가 아직 중동 시장 일부의 문제로 '1997년의 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는 섣부르다고 지적한다. 중동 사태가 조기에 해소될 경우 오히려 발주물량 확대 등으로 국내 업체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해외건설 수주 구조가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주액이 70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신기록을 써나가고 있지만 중동 일변도의 취약한 구조는 반드시 탈피해야 할 문제다. 지난해 715억달러의 해외수주액 중 중동지역의 비중은 무려 66%에 달할 만큼 절대적이다.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발주처에 의존하는 단순 시공 위주의 천수답 수주에 벗어나 고부가가치형 사업구조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느냐 하는 여부에 우리 건설업계의 미래가 달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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